이안 - Never Ending Dream

2013. 5. 15. 13:18 from Cinema/Yours





In 1978, as I applied to study film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my father vehemently objected. He quoted me a statistic: ‘Every year, 50,000 performers compete for 200 available roles on Broadway.’ Against his advice, I boarded a flight to the U.S. This strained our relationship. In the two decades following, we exchanged less than a hundred phrases in conversation.

Some years later, when I graduated film school, I came to comprehend my father’s concern. It was nearly unheard of for a Chinese newcomer to make it in the American film industry. Beginning in 1983, I struggled through six years of agonizing, hopeless uncertainty. Much of the time, I was helping film crews with their equipment or working as editor’s assistant, among other miscellaneous duties. My most painful experience involved shopping a screenplay at more than thirty different production companies, and being met with harsh rejection each time.

That year, I turned 30. There’s an old Chinese saying: ‘At 30, one stands firm.’ Yet, I couldn’t even support myself. What could I do? Keep waiting, or give up my movie-making dream? My wife gave me invaluable support.

My wife was my college classmate. She was a biology major, and after graduation, went to work for a small pharmaceutical research lab. Her income was terribly modest. At the time, we already had our elder son, Haan, to raise. To appease my own feelings of guilt, I took on all housework – cooking, cleaning, taking care of our son – in addition to reading, reviewing films and writing s. Every evening after preparing dinner, I would sit on the front steps with Haan, telling him stories as we waited for his mother – the heroic huntress – to come home with our sustenance (income).

This kind of life felt rather undignified for a man. At one point, my in-laws gave their daughter (my wife) a sum of money, intended as start-up capital for me to open a Chinese restaurant – hoping that a business would help support my family. But my wife refused the money. When I found out about this exchange, I stayed up several nights and finally decided: This dream of mine is not meant to be. I must face reality.

Afterward (and with a heavy heart), I enrolled in a computer course at a nearby community college. At a time when employment trumped all other considerations, it seemed that only a knowledge of computers could quickly make me employable. For the days that followed, I descended into malaise. My wife, noticing my unusual demeanor, discovered a schedule of classes tucked in my bag. She made no comment that night.

The next morning, right before she got in her car to head off to work, my wife turned back and – standing there on our front steps – said, ‘Ang, don’t forget your dream.’

And that dream of mine – drowned by demands of reality – came back to life. As my wife drove off, I took the class schedule out of my bag and slowly, deliberately tore it to pieces. And tossed it in the trash.

Sometime after, I obtained funding for my screenplay, and began to shoot my own films. And after that, a few of my films started to win international awards. Recalling earlier times, my wife confessed, ‘I’ve always believed that you only need one gift. Your gift is making films. There are so many people studying computers already, they don’t need an Ang Lee to do that. If you want that golden statue, you have to commit to the dream.’

And today, I’ve finally won that golden statue. I think my own perseverance and my wife’s immeasurable sacrifice have finally met their reward. And I am now more assured than ever before: I must continue making films.

You see, I have this never-ending dream.




Posted by Alan-Shore :

일요일의 리얼리즘

2012. 12. 31. 04:06 from Cinema/Yours






어떠한 경험을 한 후에 그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기 위해 글을 쓰진 않는다. 오히려 이쁘고 오밀조밀하게 엉겨있는 문장이나 반짝이는 어휘적 표현이 적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서 종종 글을 적을 뿐이다. 경계가 없는 모호한 현상과 상황, 숱한 감정들을 최대한 포용할 수 있는 아슬한 표현력이 부럽다. 그런 과정을 고민하는 순간이 즐겁다. 몇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표현 하나가 있어 생각난 김에 적어두고 싶었다. 물론 나의 생각은 아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가 쓴 리뷰 중에서 언급된 배용균 감독의 표현이다. '일요일의 리얼리즘'. 흥미롭게만 느껴졌던 이 표현이 자꾸만 떠오른다. 생각보다 적용 가능한 순간들이 많았다. 아, 참 이쁘다. 이런 표현은. 선을 긋는 동시 많은 것들을 포용하는 발상이다. 일요일의 리얼리즘. 기억해두자.  



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지었다. 모두가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쯤 쉬는 세상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다루는 자연의 풍경에 그 어떤 다른 변형도 가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무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생활을 끌어내려는 마음에서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정 사이의 자기 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95 년쯔음해서 쓰여졌을 정성일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리뷰 중에서








Posted by Alan-Shore :














1999년에 발간됐던 <필름 컬쳐> vol.2 no.3  김성욱씨의 칼럼 <히치콕의 탄생과 영화의 죽음>






























시각성과 순수영화


히치콕은 어떻게 자신을 순전히 시각적 수단을 통해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고려한다. 그의 영화에서 형식은 단지 내용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용을 창조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감독의 능력은 대상을 사진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영상으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 또한 배우의 표정 연기보다는 카메라의 시각성을 통해 드러난다. <사보타주>에서 여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대사나 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의 손, 눈, 다시 칼을 든 손, 그리고 나서 눈을 비추는 카메라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창>에서 보여지는 것은 밖을 관찰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진 작가, 그 사람이 보는 대상, 그리고 그의 반응이다. 히치콕이 꿈꾸는 것은 순수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뤼포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은 의혹, 질투, 욕망 그리고 부러움 등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즉 설명적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감독이었다.


그가 일종의 순수 영화에 몰두했던 것은 1920년대 몇 년 간 독일 베를린의 우파 UFA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서 히치콕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특히 무르나우 영화에서의 신들린 듯한 카메라 운동에 매혹됐다. 로메르와 샤브롤이 지적하듯이 <살인>의 첫 장면에서 보여지는 긴 측면 트래블링 숏과 프레임, 조명, 무대 장식 들을 본질적인 몇 개의 선으로 처리하는 순수한 미장센은 독일 표현주의, 특히 무르나우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그는 많은 무성 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사운드의 도래와 더불어 무성 영화가 갖고 있던 자유로운 카메라 운동과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이 종말을 고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동은 배우와 종종 갈등을 유발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인물은 행동하고 지각하고 경험할 수 있지만 그들을 한계짓고 결정짓는 관계를 드러낼 수는 없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순수하게 카메라 운동을 통해서 보여진다. 그것은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특별한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며, 끝내는 우리 자신의 감성의 리듬에 따라 우리를 하나의 감정에서 또 다른 감정으로 이끌어 가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새>에서 새들의 습격 이후 보안관이 찾아와 미치와 대화하는 장면은 사건에 대한 정황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멜라니의 주관적인 시점 숏과 멜라니를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어머니의 불안과 근심을 묘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사용은 프레임을 마치 일종의 격자판처럼 엄격한 틀로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서스펜스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히치콕에게 있어 프레임은 모든 구성 요소들을 제한하는 태피스트리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엄격하고 제한적인 프레임의 사용은 종종 바쟁과 같은 리얼리즘적인 영화 비평가들에 의해 비판받는다. 하지만 히치콕의 혁신은 프레임의 엄격함을 통해 정신적인 관계들을 드러내는 데 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그가 영향을 받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기법에 기인한다. 그 당시 독일 표현주의자들의 기법은 그 뿌리를 멜로드라마와 디킨스의 소설에 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맨섬의 사나이> (1929) 와 같은 초기 무성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원형은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에서 창안한 교차 편집을 통한 서스펜스의 구축과 유사하다. 그리피스는 이러한 기법을 디킨스의 소설에서 배웠다고 인정했다.


히치콕은 영화의 이야기 소재를 극적으로 구성하는 것 또는 극적인 상황을 가능한 한 강렬하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세팅을 만들어 낸다. 사건은 <맨섬의 사나이>와 <새>에서처럼 인간을 고립시키는 섬에서 혹은 <로프>에서처럼 시공간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무대 공간에서 발생하거나, 심지어 <라이프 보트>에서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 보트 위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인간을 고립시키는 공간과 환경은 표현주의적인 무성 영화에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영혼으로 물들어진 풍경 Landschaft mit seele' 과 유사하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표현주의적인 필치의 공간은 많은 부분 그의 영화를 건축적인 공간으로, 예를 들어 <현기증>의 경우 영화 초반부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건축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지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은 수세기가 지난 집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로 카메라는 훑어 가고 또한 정지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18세기 스페인풍의 오래 된 수도원 건축물과 종탑은 주인공 스코티의 강박증, 즉 현기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서스펜스, 시네마 - 그라피, 그리고 기억


그러나 히치콕의 영화가 자의적이고 정당화되지 않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영화적 논리로서 제시하는 서스펜스의 규칙 때문이다. 만일 히치콕의 엄격한 프레임과 카메라 운동, 그리고 정신적인 세팅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구성적인 측면에서 서스펜스는 이러한 감정을 지속하고 지연시키면서 관객을 영화 속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고한 사람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쓴다는 테마는 사건과 화면의 이중성을 통해 '둘'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다. <의혹의 그림자> 에서 두 주인공, 즉 살인자와 조카는 찰리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둘의 만남은 무죄와 유죄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지워 버린다. <의혹은 전망차> 에서 브루노와 가이는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이혼을 거부하는 가이의 부인을 브루노가 살해했을 대, 그들은 둘로 분열된 한 인물이며 그만큼 가이의 무죄와 유죄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로메르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적인 테마는 단지 무고한 자가 범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범죄를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교환을 통해 죄가 없다고 보여지는 한 인물이 범죄자와의 접촉으로 해서 그의 범죄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고백한다> 에서 무고한 신부는 범죄자인 집사로부터 고백을 통해 범죄를 선물받게 된다. <현기증>에서 스코티는 단지 매들린에 불쌍하게 현혹된 것만이 아니라 '거짓된 죄지음,' 다른 한편으로 거짓된 무고함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다. 매들린의 죽음에 대해 그가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민함과 현기증으로부터의 회복은 주디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는 결국 더 이상 무고한 가자 아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관계들의 체계는 영화를 단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 영화, 관객들의 세 항의 함수로서 나타나게 한다. 그의 영화 전체는 오직 추론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사건들에 대한 지각과 기억을 통해 행동 및 그것을 행한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관계들을 해석한다. <현기증> 이 순수한 서스펜스의 영화가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액션을 위한 동기를 더 이상 열정들 혹은 비극적인 도덕에서 찾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은 더 이상 사건에 대한 행동적인 동기 부여를 하고 있지 않다. 스코티가 매들린의 차를 쫓아가는 구부러진 길들처럼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관계들을 재해석하고 추론할 뿐이다. 히치콕의 영화는 행동, 지각, 감정에 대립해서 관계-이미지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중은 영화 속으로 들어와야만 하고 도 한편으로 그들의 반응이 영화의 통합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따라서 서스펜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러한 3항 관계에서 비롯된다.


히치콕은 <사이코>를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관객이 순수 영화에 의해 자극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증류된 순수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스타일적인 엄밀함 혹은 작가적 서명과도 같은 기하학적이고 동적인 형식을 얻게 된다. 그런 점에서 히치콕의 영화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와 더불어 선적인 본성을 갖는 시네마-그라피가 된다. 이러한 선적인 본성은 <사이코>의 꺾어진 선들과 흑백 대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의 화살표와도 같은 좌표들,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으로 현상화된다. 로메르는 히치콕의 <현기증>을 <의혹은 전망차>에서 보여지는 직선과 원의 강박적인 현시와 비교하며 크레딧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나선의 형상을 설명한다. <현기증>에서 직선과 원은 세 번째 차원, 즉 심도의 매개에 의해 결합한다. 이러한 나선형은 스코티가 차 안에서 그려 보는 회로, 매들린의 목덜미에서 보여지는 머리 다발의 나선형, 그리고 스코티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를 종탑으로 이끄는 계단의 현기증적인 나선형으로 나타난다. 로메르는 이러한 나선형적인 소용돌이가 공간 안에서 여행하기보다는 일종의 시간 안에서의 여행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스코티는 단지 과거로의 탐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로의 나선형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을 만들지만 그 고리는 결코 닫히지 않고 우리를 계속 회상으로 깊게 이끈다. 따라서 <현기증>의 건축학적인 공간들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근거는 시간에서의 방향 잃기의 인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스코티의 능력 마비 상태(현기증)는 공간적인 장에서가 아니라, 시간적인 장에서 발생한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의해 구성되어 있고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미래로 향해 있는 예감이라기 보다는 과거로 향해 있는 회상 (기억 혹은 추억)과 관련된다. 따라서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형의 나이테는 일종의 이미지-크리스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히치콕의 죽음, 고다르 그리고 이미지의 죽음


고다르는 히치콕의 이러한 특성을 영화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히틀러 혹은 나폴레옹 이상으로 실제로 세계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던 대중에 대한 통제력을 영화를 통해 갖고 있었다. 히치콕은 대중을 위해 이미지와 이미지들의 연쇄를 통해 영화가 여전히 예외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했다. 히치콕은,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면, <오명>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열지어선 보르도 포도주병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을 떨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 순수한 영화의 힘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오명>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자넷 리가 베이츠 모텔로 왜 가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한 쌍의 스펙터클들 혹은 풍차를 기억할 것이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들. 만일 당신이 <오명>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아마 포도주병들. 당신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기억 못할 것이다. [반면] 당신이 그리피스 혹은 웰스, 혹은 에이젠슈테인 혹은 나(고다르)를 기억할 때, 평범한 대상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히치콕을 통한 영화적 힘의 위력은 또한 그의 죽음을 영화사적인 사건으로 만들어 낸다. 1980년 4월 히치콕이 죽었을 때, 고다르는 <네 멋대로 뛰어라 Sauve qui peut (la vie)> (1979)를 갖고 칸을 방문했었다. 이 영화는 고다르에게 있어서 오랫동안의 공백을 깨고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히치콕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치콕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전을 표지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시각성에 대한 의심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시각성의 쇠퇴로 정의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시대는 시각성을 억압한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은 내가 첫번재 영화를 만들 때처럼 여겨진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히치콕은 무성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영상의 힘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재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영화를 카프라, 에이젠슈타인과 더불어 대중적인 예술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히치콕처럼 탄생만큼이나 죽음이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히치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차라리 젊은 나이에 죽어 간 무성 영화와 1980년의 히치콕의 죽음이다.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가 만일 인간의 생명과 유사한 나이를 갖고 있다면, 영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영화를 만들려는 욕망을 재발견하고 영화의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을, 이제 늦었지만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Alan-Shore :

창작의 세계에서 영감(靈感)은 신의 선물과도 같다. 찰나의 순간에 스쳐지나간 한 줄기 빛을 잡아늘이다보면 어느새 수심이 가득했던 창작자의 얼굴에도 미소가 떠오른다. 종합예술로 불리는 영화는 유독 많은 영감의 원천을 갖고 있다. 한곡의 음악, 한점의 그림, 한편의 소설에도 영감의 선물은 가득하다. 특히 한장의 사진은 영화의 드라마를 창출해내거나, 인물을 창조하기도 하며 장면의 빛을 구성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곤 한다. 영화인들에게 신의 선물을 하사한 사진작가들로는 누가 있을지 궁금했다. 연출, 촬영, 미술 등 각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는 8명의 영화인들은 저마다 영화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과정뿐만 아니라 예술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영향을 끼친 사진작가를 추천했다. 사진과의 첫 만남과 그로부터 얻은 영감이 자신의 작품으로 이어진 사연들을 가나다순으로 소개한다. 그들의 영화세계를 엿볼 수 있는 또 하나의 창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정한석 / 강병진  씨네 21 2007.03.09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청춘의 빛  김지운 영화감독  브루스 데이비드슨의 <영 커플>(1958) 

“매그넘 회원이기도 한 브루스 데이비드슨은 미국사회의 루저들을 따뜻한 시각으로 촬영해온 작가다. 오래전에 백수생활할 때 이 작가에 관해 알게 됐는데, 그 뒤로도 우리나라 갤러리에서 사진전 등을 할 때 보러 가곤 했다. 그가 관심을 두고 자주 담는 건 흑인, 노동자들, 할렘가의 아이들, 길거리 서민들, 서커스의 난쟁이 단원들 혹은 아주 낮은 곳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이다. 대체로 미국사회의 어둡고 낮은 부분들을 많이 다뤄왔는데, 놀라운 것은 카메라와 대상 사이에 어쩔 수 없이 놓여 있을, 그 거리감이 마치 증발되어버린 느낌이 있을 만큼 대상이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그중에서도 나를 매혹시킨 한장의 사진은 <영 커플>이라는 제목의 사진이다. 서민들이 지나다닐 법한 허름한 공간에서 두 젊은 남녀가 거울을 보고 몸을 치장하는 것을 포착한 것인데, 마치 그들은 현실이나 세상에 대해서는 관심없다는 투로 아마 그 나이 때에나 가질 수 있는 거침없는 모습을 발산하고 있다. 그들의 전망은 밝지 않은 게 분명한데도, 그 순간만큼은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는 빛나는 이미지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기성세대에 편입되기 직전의 그 찰나,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가질 만한 모습 말이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사진이다.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짧고 아름다운 순간을 명징하고 아름답게 포착했다. 처음으로 시나리오 공모에 당선된 내 시나리오 <좋은 시절>도 바로 이런 어두운 시기에 자신만의 빛을 내는 젊은 그들에 대한 느낌을 담으려 했다.”





 
타인을 인정하는 따뜻한 시선 김태용 영화감독  다이앤 아버스의 <일란성 쌍둥이, 로젤>(1967)

“다이앤 아버스는 비정상인들, 아니 이 세계의 이방인들을 많이 찍어왔다. 왜 우리가 그들을 대할 때의 어떤 딜레마가 있지 않나. 특별하다고 말하는 건 위악인데, 그렇다고 평범하게 본다고 말한다면 그것 또한 위선이 되는, 그들을 똑같이 대한다고 말할 때의 혼란. 그런데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은 그것에 대해 너무 당당하여 오히려 그 혼란을 무화하는 지점이 있다. 가령 새로운 사물을 찾기보다 사물을 새롭게 보려고 노력하는 매그넘 사진작가들의 방식이 있는가 하면, 다이앤 아버스의 경우는 실제로 특이한 사람들을 많이 찍는다. 다이앤 아버스 사진 중에는 기형인들이 많다. 그전에는 이런 사진을 좋아하지 않았는데 이 사람 사진을 보며 생각이 좀 바뀐 것 같다. <일란성 쌍둥이, 로젤>이라는 제목의 이 사진도 그중 하나다. 보고 있으면 내가 이 이방인들과 함께 세상에 같이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이 세계에서 도망가지 않고 그들을 봐야 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언급하지 않고 무시하는 것보다 언급하며 친구가 되려는 것이 촌스러운 것처럼 치부되곤 하지만, 인정하지 않고 멀어지는 것보다는 중요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다이앤 아버스의 사진에는 그걸 인정하는 태도가 있다. 피하기보다 그 자리에서 직시하기, 아프지만 거기에 계속 서서 뻔뻔하기, 다른 데 보며 고상하게 모른 척 있으려 하지 않고 ‘바로 여기 있다’고 응시하기. 딜레마를 대하는 그 태도가 감동적이다.”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영화 같은 민병훈 영화감독  만 레이의 <Noire et Blanche>(1926)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의 영화를 보는 기분이다.” <포도나무를 베어라>를 연출한 민병훈 감독은 만 레이의 사진에서 고전적인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모성과 자연, 또는 순수함을 느낄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의아하게 볼 것이다. 그런 다양성을 담고 있기 때문에 고전인 듯하다.” 만 레이는 친구인 파블로 피카소와 마르셀 뒤샹의 초상사진과 여성의 누드와 뒷모습을 담은 작품들로 널리 알려져 있는 사진작가이면서 화가이자 영화감독이다. “만 레이는 삶 자체도 섹시하지만, 사진에 투영된 이미지들도 관능적이다. 현재 준비하고 있는 차기작에 등장하는 여성의 뒷모습이나 사물들의 이미지에도 많은 영감을 얻고 있다.” 만 레이가 발명한 당시로는 혁신적이었던 기법들 또한 민병훈 감독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영화에서 CG를 눈치채지 못하는 것과도 같다. 만 레이의 사진들은 기교를 사용하면서도 오히려 그 기교가 가장 자연스러운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민병훈 감독은 전작들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만 레이의 사진에서 얻은 느낌들을 반영했다. “<괜찮아, 울지마>는 영국에서만 사용되는 약품으로 인화했고, <벌이 날다>는 필름에서 색을 뺐다. 영화의 내용과 이미지에 가장 알맞은 기교를 사용하여 관객이 오히려 더욱 자연스럽게 봐주길 원했다.” 민병훈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사진은 목각인형을 손에 쥔 한 여자의 얼굴이다. “눈을 감고 있는 여자의 얼굴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뜨게 만들고 있는 것 같다.” 










기술이 곧 예술이다 박기형 영화감독  로버트 실버스의 <엘비스>(2001)

로버트 실버스는 기존의 사진들을 모자이크로 조직해 새로운 사진을 만드는 포토모자이크의 창시자다. 수천개의 꽃사진으로 다이애나비의 초상을 만들어 그녀의 죽음을 애도하는가 하면, <라이프>의 커버를 가지고 만든 마릴린 먼로의 얼굴은 <라이프>의 60주면 기념 표지를 장식했다. 2002년 한 전시회에서 로버트 실버스의 작품을 처음 보게 된 박기형 감독은 “기술이 곧 예술이라는 말을 체감했다”고 한다. “보자마자 소름이 끼쳤다. 마릴린 먼로나 다이애나비의 초상은 아이디어적인 것이라 할 수 있지만, 피카소의 <게르니카>를 스페인 시민전쟁의 사진들로 그려낸 작품은 새로운 형태의 사진예술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도 박기형 감독이 로버트 실버스의 작품에서 가장 주목한 부분은 기존의 것들을 가지고 재조합하여 새로운 창작물을 만든다는 점이었다. “있는 것들의 재조합으로 창작의 가능성을 찾아가는 예술에 있어서 중요한 태도다. 영화 역시 훌륭한 고전이 많고, 새로운 작품들 또한 그것으로부터 완벽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기술과 노력으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 또한 시사하는 바가 컸다. “기술과 노력이 천재성보다는 훨씬 현실적인 창작의 뿌리인 것 같다.” 그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작품은 엘비스 프레슬리의 사진들로 만든 프레슬리의 초상이다. “그 어떤 사진보다도 엘비스 프레슬리를 가장 정확하고 풍부하게 표현한 작품이 아닐까?”

 








 시각의 혁명 이명세 영화감독  듀안 마이클의 <사물의 기이함>(1973)


8인의 영화인이 공통으로 자주 거론하는 작가가 듀안 마이클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먼저 그를 선점한 이명세 감독이 듀안 마이클을 말한다. 복잡한 그림과 사진들이 섞여 있는 이명세 감독의 영화 <M>의 콘티 중에도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어김없이 참조물로 등장한다. <앤디 워홀>이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그림에서 영향을 받은”, 마치 베이컨이 자신의 자화상이나 이런저런 삼면화 시리즈를 통해 보여준, 인간 신체의 늘어짐을 생각나게 하는 사진이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우리가 현실에서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준다.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이 다가 아니라는 거다. 거기에는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있다(듀안 마이클의 사진 중에는 마그리트의 그림 앞에 마그리트를 세워 찍은 사진들도 있다). 듀안 마이클의 사진은 우리가 하고 있는 생각들, 꿈과 현실, 이 모든 것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보게 만드는 감동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로 <사물의 기이함>이라는 제목의 사진이 있다. 처음에는 욕조의 미니어처처럼 보이지만, 연속사진으로 액자 속에 또 액자가 있는 걸 거듭 알게 되면서 과연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이 액자 안의 무엇인지 아니면 또 다른 무엇인지 망설이게 되는 것이다.” 듀안 마이클은 연속 사진을 통해 사진적 철학에 접근한 작가로 유명한데, 이명세 감독이 추천한 <사물의 기이함>은 그의 세계를 여실히 보여주는 일례로 손꼽히고 있다.








 

풍경과 인물의 리얼리즘 이모개 촬영감독  요제프 쿠델카의 1979년작


“사람들은 그가 사진을 찍는 게 아니라,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으로 느낀다.” 20년 전 사진동아리의 한 선배가 해준 말은 이모개 감독이 요제프 쿠델카의 사진집을 펼쳐보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사진들이 매우 세게 느껴졌다. 어떤 사진들은 세상에 없는 시간을 찍어낸 것 같더라. 예를 들면 마르케스 소설의 리얼리즘 같은 느낌이다. 한장의 사진 안에 수만 가지의 감정이 있는 듯했다.”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사진작가인 요제프 쿠델카는 1968년 프라하의 봄에 뛰어들어 셔터를 누른 사진작가로 유명하지만 이모개 감독에게 특히 강렬한 인상을 남긴 작품은 집시들의 삶을 담아낸 사진들이었다. “드라마틱한 사진들은 아니지만, 오히려 느낌이 정형화되어 있지 않아 좋다. 날것 그대로를 담아낸 듯한 사진들도 이면의 사연을 궁금하게 만드는 매력이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은 1979년 프랑스에서 촬영된 해변에서 물놀이를 하는 듯한 어느 커플의 모습이 담긴 사진. 감독 자신이 워낙 바다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사진작가의 존재감보다는 피사체가 그 자체로 주인공이 되는 사진이기 때문. “개인적으로 <8월의 크리스마스>를 가장 좋아하는데, 그 영화에서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촬영자의 의도가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풍경과 인물에 깊이 몰입하는 태도가 감동적이었다. 나 역시 그런 작업에서 느낄 수 있는 기운을 얻고 싶다.” 














사진으로 사람과 소통하는 법 정정훈 촬영감독  낸 골딘의 <담배 연기가 자욱한 차>(1979)


<친절한 금자씨>를 준비하던 정정훈 촬영감독은 박찬욱 감독의 집에서 낸 골딘의 사진집을 발견했다. 인물들이 슬픔과 기쁨,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의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사진에서 정정훈 감독은 “촌스러울 정도로 자연스럽다”는 인상을 받았다. “작가가 구도를 위해서 어느 자리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알맞은 각도를 위해서 움직인 것도 아니다. 낸 골딘은 그저 그 공간에서 자기가 서 있는 위치에서 찍은 것 같다.” 특히 책 표지에 나온 ‘세컨드 팁에서 화장을 고치는 C’라는 제목의 사진은 금자를 만든 중요한 모티브였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금자가 화장실에서 거울을 보는 장면이 바로 이 사진에서 비롯된 장면이었다고. 정정훈 감독이 가장 좋아하는 낸 골딘의 사진은 ‘담배 연기가 자욱한 차’란 제목의 사진이다. “역광으로 들어오는 빛이 강렬했다. 특별한 연출없이 일상적인 공간에서 빛의 힘을 그토록 자연스럽게 담아낸 게 놀라웠다. <친절한 금자씨>에서도 금자가 제니와 근식과 함께 봉고차를 타고 가는 장면에서 비슷한 연출을 해보고 싶었다.” 정정훈 감독을 사로잡은 또 한장의 사진은 애인에게 맞아 얼굴에 멍이 든 채로 찍은 낸 골딘 자신의 셀프 포트레이트. “자신의 아픔을 쿨하게 보여준 사진이다. 영화나 사진이나 의사소통의 도구인 측면에서 공유하는 면이 많은데, 낸 골딘도 사진작가의 직함을 떠나 사진으로서 사람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숨은 이야기가 있는 풍경 류성희 미술감독  로버트 프랭크의 <Parade-Hoboken, New Jersey>(1955)


“영화 작업을 시작하면서 사진에 더 큰 관심을 갖게 됐다. 로버트 프랭크는 다이앤 아버스와 함께 내 영화 작업에 영향을 준 최초의 사진작가다.” 류성희 미술감독은 현대사진의 기수로 불리는 미국의 로버트 프랭크를 꼽는다. “로버트 프랭크는 결정적 장면을 포착해서 본질을 미학적으로 완벽하게 찍어내려던 그 이전의 보도사진들과 달리 연출이 아님에도 현상이나 사건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느낌이 있어 좋다. 성조기가 걸려 있는 이 사진도 보통의 작가라면 난리 법석인 행진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그 풍경에서 뭔가 구하려고 했을 텐데, 이 사람은 개인의 정체성이 사라지고 성조기가 그 사람들을 가리고 있는 이 장면을 찍었다. 위대하다고 치부되던 당시 미국사회의 시민이 실제로는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그 국기에 가려진 얼굴들로 느끼게 한다. 우상화를 배제할 뿐만 아니라, 대단히 시적이다. <살인의 추억>을 할 때 봉준호 감독이 참조하라고 준 건 신디 셔먼의 사진이었지만, 개인적으로는 로버트 프랭크의 사진을 많이 생각했다. <살인의 추억>이 감독 개인의 입장에서 주변적인 시각을 모아 복합적인 요소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지금 말한 그런 방식의 예술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군중성이나 공공성이 아닌 작은 것을 놓치지 않으며 원인을 찾아가는 로버트 프랭크의 작가적 태도는 창작자로서 바로 내가 닮고 싶은 태도다.”  








  


Posted by Alan-Shore :










본문의 글은 수잔 손택의 저서 <해석에 반대한다 Against Interpretation (1964)>에 실린 에세이,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Flaming Creatures (1963)> (국내 번역판의 명칭은 불타는 족속들이었지만 국내영화제 상영당시 사용된 황홀한 피조물들로 수정하였다.)에 관한 지지와 분석이다. 본문의 택스트와 하위에 첨가된 영상들은 어쩌면 누군가에겐 다소 선정적이고 불쾌한 경험이 될 수도 있음을 고지하는 바이다. * 배경음악은 상위 검은바를 이용 (미미시스터즈 - 우주여행)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 이 근접 촬영한 흐물흐물한 성기, 거대한 젖가슴, 자위행위, 그리고 구강성교 장면에 내가 유일하게 유감스러운 점은, 이런 장면들 때문에 이 걸출한 영화를 그냥 입에 올리는 것 자체가 힘들게 됐다는 점이다. 우리는 이 영화를 변호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영화를 입에 올린다거나 변호까지 한다고 해서, 내가 이 영화를 실제보다 덜 괴이하다거나 덜 충격적인 영화인 것처럼 보이게 만들려는건 아니다. 공식적으로 <황홀한 피조물들>은 여자 두명과 그보다 훨씬 많은 남자들이 중고품 할인점에서나 팔만한 현란한 색상의 여성복을 입은 채 시종일관 시시덕거리고 어울려 춤추면서, 온갖 방탕한 장면과 성적광분, 로맨스, 흡혈귀 짓을 보여주는 영화다. - 여기에 몇 곡의 라틴가요 (시보니, 아마폴라) 로큰롤, 긁히는 소리를 내는 바이올린 연주, 투우음악, 몇명의 남자들이 여장을 한 채 등장했던 '하트모양 립스틱' 이라는 기이한 신제품 광고에 배경음악으로 쓰였던 중국노래, 떨리는 고성으로 이뤄진 합창곡, 가슴 큰 어느 여자를 집단 강간하는 장면이 유쾌하게 집단 성교로 바뀌는 장면에서 나온 비명소리등이 반주로 곁들여 진다. 

간단히 말해서 <황홀한 피조물들>은 괴이하며, 또 그럴 작정으로 만든 영화다. 제목에서부터 바로 그런 의도가 여실히 드러난다. 공교롭게도 <황홀한 피조물들>은 포르노가 아니다. 성적흥분을 일으키려는 명백한 의도와 내용을 지닌 장르를 포르노라고 정의한다면, 이 영화의 나체 장면이나 (직접적인 성교가 두드러지게 생략된) 온갖 성적장면의 묘사는 너무나 비애감에 차있으며, 너무나 천진난만해 음란하다고 보기 힘들다. 스미스의 성교 이미지는 감상적이거나 음탕하다기 보다는 어린아이 같고 재기발랄하다.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해서 경찰 당국이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지않다. 스미스의 영화가 법정에서 목숨을걸고 싸워야만 하리라는 것도, 슬프긴 하지만 불가피한 현실일 것이다. 실망스러운 점은 성숙한 지식인과 예술가의 공동체가 이 영화에 대해 무관심이거나 신경질적 반응, 혹은 노골적인 적의를 보였다는 점이다. 거의 유일한 지지자는 충직한 영화감독 동아리와 시인들, 그리고 젊은 '빌리지 사람들' 뿐이었다. <황홀한 피조물들> 은 아직 일종의 컬트, <영화문화>라는 잡지를 근간으로 하는 뉴 아메리카 시네마 그룹의 입상작 수준을 졸업하지 못했다. 


우리는 스미스의 영화를 비롯해 여타 수많은 새로운 작품들을 우리에게 소개하기 위해 거의 혼자 힘으로 꿋꿋이 영웅적으로 작업해온 조나스 메카스에게 감사해야하리라. 그렇지만, 메카스와 그의 동료들의 선언이 과장되고 때로는 실질적으로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황홀한 피조물들>을 포함한 이 새로운 유파의 영화가 영화사상 전례없는 발전이 될 것이라는 메카스의 주장은 말도 안되는 것이다. 


그런 호전적인 태도는 <황홀한 피조물들>의 미덕을 이해하는데 불필요한 장애로 작용해 오히려 스미스에게 해가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어느 특정한 전통, 즉 충격적인 시적 영화의 작지만 소중한 결실인 것이다. 이 전통을 보여주는 작품으로는 브뉘엘의 <안달루시안의 개> 와 <황금시대>, 에이젠슈타인의 <파업> 일부, 토드 브라우닝의 <별종들> , 장루쉬의 <미친 지도자들> 프랑주의 <짐승의 피> 레니카의 <미로> 케니스 앵거의 작품들 <불꽃> <살아난 전갈> 노엘 뷔르쉬의 <사제수업> 등이 있다. 


미국의 초기 아방가르드 감독들 (마야 데렌, 제임스 브러튼, 캐니스 앵거)은 상당히 치밀한 기법을 연구한 단편영화로 돌아섰다. 아주 저예산으로 작업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들이 만든 영화의 색체와 카메라 촬영술, 연기, 이미지와 음향 합성은 전문적 기량을 최대한으로 살린 것이었다. 미국 영화계에 등장한 두가지의 새로운 아방가르드 스타일 가운데 하나 (그레고리 마코폴로스나 스텐 브래키지 보다는 잭 스미스나 론 라이스 등이 여기에 속한다) 는 고의적으로 조잡한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이 새로운 조류들 - 수작과 졸작, 태작 모두 - 은 부아가 치밀 정도로 영화기법의 모든 요소를 무시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투박함을 보여준다. 이는 매우 현대적인, 매우 미국적인 태도다. 전 세계 어디를 가더라도 미국만큼 구태의연한 유럽적 낭만주의가 긴 수명을 유지하는 곳도 없다. 깔끔하고 꼼꼼한 기법이 즉흥성과 진실성, 직접성을 방해한다는 믿음은 다른 어느 곳보다 미국에서 강력하게 살아있다. 아방가르드 예술의 일반적인 기법이 대부분 이 신념을 표명하고 있다. (기법에 반대하는 것조차 기법이 필요하다) 


음악의 경우, 이제는 우연성을 활용한 작곡뿐만 아니라 연주도 행해지고 있으며, 새로운 음의 재료를 찾고 기존의 악기들을 절단하는 식의 새로운 방법까지 등장했다. 회화와 조각의 경우에는 일회용품이나 기존의 잡동사니들을 재료로 이용하는 방법, 일부러 부서지기 쉬운 작품 (한번 쓰고 버리기) 을 만드는 방법, '해프닝' 같은 방법이 있다. 나름대로 <황홀한 피조물들>도 일관성과 기술적 완성도라는 예술작품을 둘러싼 속물적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캠프적인 미학을 응축하고 있는 이 전무후무한 이단적인 작품은 도착적이며 비순응적인 정의불가능한 성의 주체들의 사육제를 극화하며, 저속하면서도 또한 극한적으로 숭고한 그러나 표면만이 존재하는 실낙원의 인물들을 재연한다. 아마 모든 캠프적 영화들은, 요컨대 <핑크 플라멩고>에서 <헤드윅과 앵그리 인치>까지, <황홀한 피조물들>에 진 빚을 갚지 못할 것이다. -한국시네마테크협의회-


<황홀한 피조물들>의 (내가 세어본 바에 의하면) 일곱 시퀀스는 서로 확연히 구분될 분만 아니라 이야기도, 줄거리도, 마땅한 순서도 없다. 일련의 대목에서는 정말로 과도한 노출을 의도한 것이 아닌가 의심도 하게 된다. 그 어떤 장면도 그보다 더 길거나 짧지 않은 바로 그 길이로 만들어야 했다는 이유를 납득시켜주지 못한다. 쇼트도 전통적인 방식으로 맞춰지지 않았다. 머리 부분이 잘려 나온다거나 아무 연관 없는 인물들이 장면 끝머리에 불쑥 등장하는 식이다. 카메라는 대부분 손으로 들고 찍었고, 영상이 자주 떨린다. (이런 방법이 완전히 효과를 거둔, 그리고 의심의 여지없이 의도된 부분은 집단 성교를 찍은 장면이다)

그러나 <황홀한 피조물들>이 보여주는 아마추어적인 기법은, 최근의 수많은 언더그라운드 영화들이 그런 것처럼 보는 이를 짜증스럽게 만들지 않는다. 스미스가 시각적으로 감칠맛 나는 감독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의 영화는 매순간 볼거리로 가득하다. 게다가 그 영상에는 흔히 보기 어려운 즐거운 전율과 아름다움이 있다. 강력한 영상이 쓸모있는 영상 때문에 그 효과가 떨어지는 순간에 조차, 혹은 좀더 다듬어 졌더라면 더 좋았을 장면에서 조차 그렇다. 

오늘날에는 기교에 대한 무관심이 휑뎅그렁함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신중한 계획에 반감을 드러내는 현대예술은 흔히 미학적 금욕주의의 형태를 띄는 것이다. (추상표현 주의 회화들이 대부분 이런 금욕적 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황홀한 피조물들>의 금욕주의는 이와는 다르다. 다시말해, 이 작품에는 시각적 소재가 흘러넘친다는 뜻이다. <황홀한 피조물들>에는 생각이나 상징도, 무언가에 대한 논평이나 비판도 없다. 스미스의 영화는 순전히 감각에 바치는 향응이다. 이런 점에서 이 영화는 (프랑스의 수많은 아방가르드 영화에서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문학적' 영화와 정반대라고 할 수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을 보는 즐거움은 우리가 보고 있는것을 이해한다거나 해석할 수 있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영상 그 자체의 직접성과 강력함, 양적인 풍성함에 있는 것이다. 대부분의 진지한 현대예술과 달리, 이 작품은 좌절된 의식, 막다른 궁지에 몰린 자아를 다루지 않는다. 이렇듯 스미스의 조잡한 기교는 <황홀한 피조물들>에 구현된 감성 - 생각을 부인하는 감성, 부정 너머에 자리잡은 감성- 에 멋지게 이바지 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현대에 보기드문 예술작품이다. 이 영화는 기쁨과 천진난만함을 다룬다. 분명히, 이 기쁨, 이 천진 난만함은 (보통 기준으로 볼때) 뒤틀리고 퇴폐적이며, 아무리 못해도 대단히 연극적이고 인위적인 주제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확히 이 때문에 이 영화가 아름다움과 현대성을 얻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오늘날의 한 장르, 즉 '팝아트'라는 경박한 이름으로 통하는 장르의 훌륭한 견본이 되는 작품이다. 스미스의 영화는 팝아트의 쾌활함과 꾸밈없는 천진함, 교훈주의에서 벗어난 활력 넘치는 자유도 있다. 팝아트 운동이 지닌 한가지 위대한 미덕은 뭔가 주제에 대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낡은 규범을 후려갈기는 방식에 있다. (말할것도 없이 세상에는 입장을 취해야만하는 일련의 사안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는건 아니다. 그런 사안을 다룬 예술작품의 극단적인 사례가 <대리인>일 것이다. 내말은, 인생에는 입장을 취할 필요가 없는 요소들, 특히 성적 쾌락같은 요소들도 있다는 뜻이다)


팝아트라고 불리는 작품들 가운데 최고로 꼽히는 작품들은 예술에서 묘사된 것 - 그리고 넓은 의미에서, 인생에서 경험한 것- 에 반드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표명해야 한다는 낡은 사명을 내던지겠다는 의도를 실천한다. (바로 이것이 새로운 체제순응주의의 또다른 징후, 대중문화의 가공물에 환호하는 일종의 열병 현상이라며 팝아트를 도외시하는 자들의 생각이 어리석을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팝아트는 이전 같으면 모순으로 여겨졌을 멋지고도 새로운 요소가 뒤섞인 행동양식을 받아들인다. 이렇듯 <황홀한 피조물들>은 성교를 재기 발랄하게 조종할 뿐만 아니라 성적 충동을 과장되게 그리고 있다. 시각적인 면만 보더라도 이 영화는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 즉석에서 만들어낸 것이 분명한 장면들, 가령 늘씬하고 여자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앙상하고 털투성이의 사람들이 뒹굴고 춤추고 성교하는 무질서한 장면들 중간 중간에 매우 치밀하게 계산된 시각효과 (레이스 달린 옷가지, 흩날리며 떨어지는 꽃잎, 활인화)가 삽입되는 식이다. 


스미스의 영화는 복장도착증의 시학을 주제로 다룬 작품이라고 도 볼 수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에 제 5회 독립영화상을 수여한 <영화문화>는 스미스에 대해 이렇게 썼다. "그는 변태들에 대한 값싼 동정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복장 도착증 환자들의 영광과 화려함, 요정나라의 마술로 우리를 강타했다. 그는 우리 삶의 한구석에 불을 밝혀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멸시하는 구석이긴 하지만"



<황홀한 피조물들>은 알고보면 동성애보다는 이성애를 다룬 영화다. 스미스의 통찰은 자신이 그린 천국과 지옥의 그림에서 몸부림치는 인물, 파렴치한 인물 등을 독창적으로 묘사해낸 보슈의 통찰과 비슷하다. 동성애적 사랑의 아름다움과 공포를 그린 앵거의 진지하고 감동적인 영화 <불꽃> 이나 주네의 <사랑의 찬가>와는 달리, 스미스의 등장에서 중요한 사실은 누가 여자고 누가 남자인지 쉽사리 알아볼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성애의 다종다양한 쾌락 속에서 불타오르는 '피조물'들이다. 이 영화는 모호함과 다의성의 복잡한 거미줄로 엮어낸 작품이며, 그 으뜸 이미지는 남자의 몸과 여자의 몸이 분간되지 않는 혼란스러운 장면이다. 흔들리는 젖가슴과 흔들리는 성기를 바꾼다한들 상관이 없어지는 것이다. 



보슈는 고통과 쾌락을 동시에 보여주는 남녀양성 소유자와 나체를 배경 삼아, 자신만의 기이하고 불완전한 관념적 형상을 구축해냈다. 스미스에게는 엄밀한 의미의 배경 대신에 (인물이 실내에 있는지 야외에 있는지도 구분하기 힘들다) 의상과 몸짓, 음악 같이 철저하게 인공적인 경관이 있다. 그의 영화에서는 양성성의 신화가 진부한 음악, 광고, 의상, 춤 그리고 무엇보다도 촌스러운 영화들에서 끌어온 한 다발의 환상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스미스는 '캠프'에 관한 지식을 풍부히 콜라주해 <황홀한 피조물들>을 촘촘히 짜놓았다. 흰색옷을 입은 채 머리에 백합을 한송이 꼿고 고개를 수그린 여인 (여장남자)이 있고, 관에서 나온 말라빠진 여인이 있다. 이 여인은 나중에 흡혈귀임이, 그리고 끝에 가서는 남자임이 밝혀진다. 그리고 검은 레이스가 달린 만털라를 두른 채 부채를 들고 스페인 풍의 춤을 추는 커다란 검은 눈의 무희(이 사람도 복장도착증 환자다)  


  
<아라비아의 족장>이라는 그림에서 따온 두건 달린 외투를 입은 채 비스듬히 기대누운 남자들과 무신경하게 한쪽 젖가슴을 드러내고 있는 아리비아의 여부, 슈테른베르크가 1939년대 초반에 디트리히와 함게 찍었던 영화들의 밀도 높고 복잡한 구성을 연상시키는 꽃과 엉마에 기대 누운 두 여인의 장면등이 있다. 스미스는 라파엘 전파의 나름함, 아르누보, 1920 대의 이국적 스타일, 스페인과 아랍의 분위기, 대중문화를 즐기는 현대의 '캠프'기법에서 끌어온 표현 형식을 통해, 영화의 이미지와 구성을 만들어낸다. 



<황홀한 피조물들>은 세계를 심미적으로 바라보는 통찰력을 성공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리고 그런 통찰력은 십중 팔구 양성성을 근저로 삼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런 유형의 예술은 아직껏 이해되지 못하고 있다. <황홀한 피조물들>이 움직이는 영역은 전통적으로 미국의 비평가들이 예술의 자리로 지정해 왔던 도덕관념의 영역이 아니다. 내가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우리에게는 도덕의 영역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잣대로 보자면 <황홀한 피조물들>은 정말로 형편없는 영화가 될 것이다. 우리에게는 심미적 영역, 쾌락적 영역도 있다. 여기가 바로 스미스의 영화가 움직이며 그 생명을 누리는 곳이다. 

 - the end 수잔 손택 <해석에 반대한다> 中 -












잭 스미스

캠프 영화의 고전이자 금지된 걸작으로 영화 애호가들의 소문 속에 회자되던 <황홀한 피조물들>의 감독, 잭 스미스는 그의 작품 하나 만으로도 미국 아방가르드 특히 언더그라운드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주목할만한 감독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의 작품을 보기 위해 유럽의 감독들(예를 들어 페데리코 펠리니와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장-뤽 고다르, 아그네스 바르다 등)은 벨기에와 뉴욕을 방문하였고 그의 팬이었던 앤디 워홀이 자신의 팩토리를 통해 영화 작업에 뛰어들었던 것 역시 유명한 일화이다. 분명 잭 스미스의 영화들은 부박하고 화려한 캠프적인 취미에 흠뻑 빠진 채 어떤 윤리적 명령의 강요도 영향을 미치는 순진무구한 관능과 열정 사이로 유영하는 현대 영화의 괴물들이다. 잭 스미스는 그 스스로 공공연한 게이였으며 자신의 영화에서 당시의 하위문화로부터 비롯된 게이 정체성, 특히 드랙 퀸과 이성복장착용자들, 성전환자들의 다양한 문화적 정체성을 인용하였다. 그런 점에서 그가 자신의 영화를 통해 재현한 인물들에 대한 그 스스로의 정의였으며 그의 작품 제목에 빈번히 등장하기도 하는 '피조물(creatures)'은 매우 시사적이다. 느와르 영화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사디즘적인 범죄자나 팜므 파탈이 동성애 정체성의 은유로 전유되었거나 아니면 공포 영화에서 괴물의 이미지를 통해 배제된 자, 비천한 존재로서 자신을 재현했던 동성애자들과 유사하게 잭 스미스 역시 자신의 불법적인 섹슈얼리티를 기괴한 모습의 인물들을 통해 표상한다. 그러나 이런 영화들에서의 비극적이면서도 모호한 존재인 범죄자, 요부, 괴물들과 달리 잭 스미스는 매우 유쾌하고 순진한 표정으로 이들의 삶을 일종의 문화적 인공물로 가정한다. 즉 잭 스미스는 우리 모두의 삶을 장식과 수사, 색채와 양식화된 몸짓으로 구성된 작품으로 간주한다. 잭 스미스는 영화 감독일 뿐 아니라 다른 아방가르드 영화 감독들의 배우로서, 사진작가, 연극 연출자, 디제이, 열정적인 의류 수집가, 비평가이기도 하였다. 이번 영화제에서는 현재 잔존하고 있는 그의 작품 중 복원이 완료된 <황홀한 피조물>을 비롯한 5편이 상영될 예정이다. - 2003년 쾌락의 셀룰로이드 궁전 프로그램 당시 감독 설명 -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수 많은 책들을 넘겨본다. 그곳에는 걸작의 가치에 대한 찬사가 있을 수 있으며, 때때론 시대사적 해프닝들의 단편적 제시와 빛바랜 논란의 역동들이 담겨있기도 하다. 허나 드넓은 스펙트럼의 그물망에도 잡히지 않는 비사들도 존재한다. 특히 세계영화사를 한글로만 읽어내려 간다면 만나보기 힘든 이름들도 존재하고있다. <아라이아 로렌스>가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던 해, 고다르는 <경멸>을 구로자와 아키라는 <천국과 지옥>을 펠리니는 <8 1/2>을 김기영은 <고려장>을 세상에 내놓은 해. 영화의 타이틀이 사서에 오르는 순간에는 항상 탄생년이 따라붙기 마련이다. 흐름을 읽어 내려가며 영향과 가치를 분석할때 가장 명확하고 편의적인 방법은 시대사적인, 년도분류에 따른 구분일 것이다. 1963. 이들을 묶는 하나의 공통어, 네자리 숫자의 그림자속에서 딱딱하게 굳어버린 과거의 용암, 실험영화의 어느 지점인 동시 수 많은 논란을 낳은 문제작. 잭 스미스 감독의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한 에세이를 위에 소개해봤다. 세가지 연유에서 옮겨봤다. 첫째론 수잔 손택에 대한 탄복이지만, 이는 본 포스팅에 있어 발단이나 동기 정도의 단서이니 다음 기회에 더욱 집중적으로 이야기하기 위해 남겨두도록 하고, 두번째로 넘어가도록 하겠다. 

이토록 소중한 영감의 원천에 대해 지나치게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는, 혹은 인지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에 대한 역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 어쩌면 반세기전의 특수한 영화운동의 흐름과 시효만료의 논란만이 <황홀한 피조물들>의 유일한 존재가치라 생각할 수 있겠으나, 그는 지나치게 틀에 얽매인 심심한 사조놀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해서 2011년에 와 이 작품을 지지하고 언급하는 일이 비상식적이고 퇴폐적인 컨셉에대한 치기어리고 무조건적인 지지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할것이다. 물론 시초에 대한 예우도 아니다. 일반의 시야에서 극단적 예술의 영역으로 치부되며 장외로 밀려나버린 본 형태에 대한 무관심으로 인해 반세기를 건너서도 유효한 특수해석의 가치를 유지하게 됐다는대에서 <황홀한 피조물들>에 대한 수잔 손택의 지지와 미인지자들에 대한 경각은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현재는 물론이고 50여년 전 <황홀한 피조물들>이 등장했을 당시에도 본 작품의 가치는 평상의 해석적 시각으로 재단할 수 있는 형태가 아니었다. 그야말로 익스페리멘탈 / 언더그라운드 무비로 분류되는 본 작품의 해석은 심미적이고 직관적인 탐색을 통해 이뤄져야 할것이며,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온 이런류들의 자유롭고 쾌락적인 세계관은 흡사 미술관에서 경험해온 현대미술의 수용방식과 비슷한 형태로라도 받아들이며 그 가치와 존재이유를 논의하고 공유해야 할것이다.      

컬트무비에 대한 매혹과 열광도 끌어와본다. 특이취향의 과도유입과 특수팬덤을 노린 기획적 허술함들로 설명되는 현대영화의 돌연변이들, 그들이 치장한 마이너한 분위기에선 찾아보기 힘든 유영하는 자유로움들을 이전의 중단편 실험영화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본 작품은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는 크리스 마르케의 1962년작 <활주로>역시 영감과 상상력으로 가득한 과거의 신품이라 생각한다. 그야말로 소수에게 회자되는 기념비적인 컬트무비의 조건은 어쩌면 이들에게 더 유리한 부분이 많을 것이다. 내러티브의 파괴가 작품의 입장을 더디게 하지만, 장르와 매체를 초월한 여유로운 마음으로 이들을 대한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창의적인 영감의 긍정적 원천을 얻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마지막 연유는 통제와 닳아가는 것들에 대한 단상이었다. 멀리갈것 없이 <황홀한 피조물들>의 감상 전후로 경험한 <악마를 보았다>의 검열과 <블랙 스완>의 충격요법에 대한 개인적 의문이었다. 간단히 이야기하자면, 1963년 영화가 공개되었을 당시 작품의 표현수위는 충격적인 것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로인한 사회적 파장도 엄청나 본 작품을 지지한 어느 누군가는 구속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고 한다. 반세기전의 빛바랜 해프닝을 듣다가 문득 두가지 갈래로 의문이 생겼다. 폭력과 성에 관한 표현수위. 이전에 7인의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참여한 실험영화 <제한해제>를 다루며 비슷한 이야기를 했던적이있다. 나체의 전시와 상식에 어긋난 성교로 점철된 필름이라고 해서 포르노취급을 당해야 하는가? 김지운과 이병헌의 메인스트림의 폭을 넓힌 과감한 시도가 어째서 1,2 초 차이로 제한상영과 청소년관람불가 사이를 오가야 하는가? 이 시점에서 페이드 아웃과 함께 과거장면 하나를 인서트 하고자 한다. 아래의 글은 박찬욱 감독이 2002년 <죽어도 좋아> 제한상영가 판정당시 올렸던 격문이다.




그뒤로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그 영화 얘기를 해댔습니다. 기자들을 만나면 빨리 감독 인터뷰 잡으라고 충고했고 감독들을 만나면 우리 반성하자고 촉구했으며, 민간인을 만나면 “기다려라, 죽이는 영화가 너희 곁을 찾아갈 것이니. 한국영화, 이제 장난 아니니라”며 자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뭡니까. 이번 판정으로 저, 완전히 바보됐습니다.


구강 아니라 비강으로 한들 뭐가 대숩니까, 아래로 들어가면 정상이고 위로 들어가면 변태입니까? 국가가 체위도 정해주나요? 남성기가 크게 잡혀서 안 된다고요? 중요한 건 어느 신체기관이 찍혀 있느냐가 아니잖습니까. 영화가 무슨 축군가요? ‘핸들링’처럼 ‘페니슬링’하면 반칙인가 보죠? 그럼 성기를 적나라하게 묘사해놓은 미술사의 숱한 걸작들은 다 뭡니까. 그리고, 성교를 가짜로 했든 진짜로 했든 그런 게 왜 문제죠? 가짜로 하는 영화들일수록 진짜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나요? 예를 들어 너무 실감나게 연기해서 꼭 진짜 같아 보이는 어떤 에로틱한 영화가 있다고 칩시다. 그럴 때 여러분은 배우들을 불러 실제 삽입 여부를 조사 확인한 다음, “삽입이면 제한이요, 불입이면 십팔이라…”, 이러실 건가요? 사랑하는 두 사람이 자기들 좋아서 진짜로 성교하는 장면과 아무 애정도 없는 배우들이 억지로 성교하는 척만 하는 장면 중에 어느 쪽이 보기에 아름다운가요? 그 장면에서 심의위원 여러분은 정말 성적 수치심을 느끼셨나요, 아니면 ‘나는 아니지만 우리 국민은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셨나요. 전자면 과민이요, 후자면 오만이라….


제 생각에는 여러분이 뭔가를 심판하려는 자세로 영화를 봐서 그런 착각이 생겼지 않았나 싶군요. 그냥 편한 마음이었다면 여러분도 아마 저희 부부처럼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우는 희한한 경험을 하셨을 텐데, 참 안 됐네요.

 


<황홀한 피조물들>과 <악마를 보았다>의 연계를 상상하며 내가 언급하고자하는 바는 논리적인 반박이나 시스템에 대한 모순지적이 아니다. 음악부터 영화까지 도통 이해가 불가능한 현 체계에 대해 놀라움을 표할뿐이다. 수잔 손택의 글을 옮기게 된 몇몇가지 연상중 하나이기에 언급하며 문제제기할뿐 도저히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모르겠다. <숏버스>와 <악마를 보았다>를 향한 몰상식하고 박한 대우들. 과연 우리는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것이 맞을까. <블랙스완>에 대한 고민은 충격과 표현이 점점 닳아져갈 몇몇 장르영화에 대한 우려와 걱정이었다. 훌륭하고 아름다운 심리스릴러 한편을 본 후 <황홀한 피조물들>의 해프닝을 듣고나니, 대런의 강박적 걸작이 몇십년 후에 받을 평가에 있어 연출장치에 대한 둔화가 걱정되어 살짝 고민했던건데, 얼마전 시네마테크에서 브라이언 드 팔마의 <시스터즈>을 보면서, 예상가능하고 고립타분한 순간을 영화적 고민을 통해 놀랍고도 지속가능한 충돌로 변환시키는 모습을 보며 한시름 걱정을 덜어놓긴 했다. 케익살해씬은 관객을 엄습하는 독특한 힘이 존재한다. 정말 사랑스러운 영화다. 

말이 길어졌지만, 결론은 이거다. 잭 스미스의 <황홀한 피조물들>은 보다 더 많이 언급되어야 하며, 수잔 손택의 글들은 보다 더 많이 읽혀야 한다는 것. 어쩌면 괴상한 40여분의 영상물일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다양한 영화적 고민을 파생시켜준 독특한 경험이었기에 애정과 존경을 아끼고 싶지 않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