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에 발간됐던 <필름 컬쳐> vol.2 no.3  김성욱씨의 칼럼 <히치콕의 탄생과 영화의 죽음>






























시각성과 순수영화


히치콕은 어떻게 자신을 순전히 시각적 수단을 통해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고려한다. 그의 영화에서 형식은 단지 내용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용을 창조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감독의 능력은 대상을 사진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영상으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 또한 배우의 표정 연기보다는 카메라의 시각성을 통해 드러난다. <사보타주>에서 여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대사나 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의 손, 눈, 다시 칼을 든 손, 그리고 나서 눈을 비추는 카메라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창>에서 보여지는 것은 밖을 관찰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진 작가, 그 사람이 보는 대상, 그리고 그의 반응이다. 히치콕이 꿈꾸는 것은 순수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뤼포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은 의혹, 질투, 욕망 그리고 부러움 등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즉 설명적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감독이었다.


그가 일종의 순수 영화에 몰두했던 것은 1920년대 몇 년 간 독일 베를린의 우파 UFA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서 히치콕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특히 무르나우 영화에서의 신들린 듯한 카메라 운동에 매혹됐다. 로메르와 샤브롤이 지적하듯이 <살인>의 첫 장면에서 보여지는 긴 측면 트래블링 숏과 프레임, 조명, 무대 장식 들을 본질적인 몇 개의 선으로 처리하는 순수한 미장센은 독일 표현주의, 특히 무르나우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그는 많은 무성 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사운드의 도래와 더불어 무성 영화가 갖고 있던 자유로운 카메라 운동과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이 종말을 고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동은 배우와 종종 갈등을 유발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인물은 행동하고 지각하고 경험할 수 있지만 그들을 한계짓고 결정짓는 관계를 드러낼 수는 없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순수하게 카메라 운동을 통해서 보여진다. 그것은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특별한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며, 끝내는 우리 자신의 감성의 리듬에 따라 우리를 하나의 감정에서 또 다른 감정으로 이끌어 가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새>에서 새들의 습격 이후 보안관이 찾아와 미치와 대화하는 장면은 사건에 대한 정황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멜라니의 주관적인 시점 숏과 멜라니를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어머니의 불안과 근심을 묘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사용은 프레임을 마치 일종의 격자판처럼 엄격한 틀로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서스펜스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히치콕에게 있어 프레임은 모든 구성 요소들을 제한하는 태피스트리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엄격하고 제한적인 프레임의 사용은 종종 바쟁과 같은 리얼리즘적인 영화 비평가들에 의해 비판받는다. 하지만 히치콕의 혁신은 프레임의 엄격함을 통해 정신적인 관계들을 드러내는 데 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그가 영향을 받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기법에 기인한다. 그 당시 독일 표현주의자들의 기법은 그 뿌리를 멜로드라마와 디킨스의 소설에 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맨섬의 사나이> (1929) 와 같은 초기 무성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원형은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에서 창안한 교차 편집을 통한 서스펜스의 구축과 유사하다. 그리피스는 이러한 기법을 디킨스의 소설에서 배웠다고 인정했다.


히치콕은 영화의 이야기 소재를 극적으로 구성하는 것 또는 극적인 상황을 가능한 한 강렬하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세팅을 만들어 낸다. 사건은 <맨섬의 사나이>와 <새>에서처럼 인간을 고립시키는 섬에서 혹은 <로프>에서처럼 시공간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무대 공간에서 발생하거나, 심지어 <라이프 보트>에서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 보트 위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인간을 고립시키는 공간과 환경은 표현주의적인 무성 영화에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영혼으로 물들어진 풍경 Landschaft mit seele' 과 유사하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표현주의적인 필치의 공간은 많은 부분 그의 영화를 건축적인 공간으로, 예를 들어 <현기증>의 경우 영화 초반부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건축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지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은 수세기가 지난 집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로 카메라는 훑어 가고 또한 정지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18세기 스페인풍의 오래 된 수도원 건축물과 종탑은 주인공 스코티의 강박증, 즉 현기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서스펜스, 시네마 - 그라피, 그리고 기억


그러나 히치콕의 영화가 자의적이고 정당화되지 않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영화적 논리로서 제시하는 서스펜스의 규칙 때문이다. 만일 히치콕의 엄격한 프레임과 카메라 운동, 그리고 정신적인 세팅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구성적인 측면에서 서스펜스는 이러한 감정을 지속하고 지연시키면서 관객을 영화 속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고한 사람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쓴다는 테마는 사건과 화면의 이중성을 통해 '둘'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다. <의혹의 그림자> 에서 두 주인공, 즉 살인자와 조카는 찰리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둘의 만남은 무죄와 유죄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지워 버린다. <의혹은 전망차> 에서 브루노와 가이는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이혼을 거부하는 가이의 부인을 브루노가 살해했을 대, 그들은 둘로 분열된 한 인물이며 그만큼 가이의 무죄와 유죄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로메르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적인 테마는 단지 무고한 자가 범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범죄를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교환을 통해 죄가 없다고 보여지는 한 인물이 범죄자와의 접촉으로 해서 그의 범죄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고백한다> 에서 무고한 신부는 범죄자인 집사로부터 고백을 통해 범죄를 선물받게 된다. <현기증>에서 스코티는 단지 매들린에 불쌍하게 현혹된 것만이 아니라 '거짓된 죄지음,' 다른 한편으로 거짓된 무고함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다. 매들린의 죽음에 대해 그가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민함과 현기증으로부터의 회복은 주디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는 결국 더 이상 무고한 가자 아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관계들의 체계는 영화를 단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 영화, 관객들의 세 항의 함수로서 나타나게 한다. 그의 영화 전체는 오직 추론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사건들에 대한 지각과 기억을 통해 행동 및 그것을 행한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관계들을 해석한다. <현기증> 이 순수한 서스펜스의 영화가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액션을 위한 동기를 더 이상 열정들 혹은 비극적인 도덕에서 찾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은 더 이상 사건에 대한 행동적인 동기 부여를 하고 있지 않다. 스코티가 매들린의 차를 쫓아가는 구부러진 길들처럼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관계들을 재해석하고 추론할 뿐이다. 히치콕의 영화는 행동, 지각, 감정에 대립해서 관계-이미지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중은 영화 속으로 들어와야만 하고 도 한편으로 그들의 반응이 영화의 통합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따라서 서스펜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러한 3항 관계에서 비롯된다.


히치콕은 <사이코>를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관객이 순수 영화에 의해 자극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증류된 순수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스타일적인 엄밀함 혹은 작가적 서명과도 같은 기하학적이고 동적인 형식을 얻게 된다. 그런 점에서 히치콕의 영화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와 더불어 선적인 본성을 갖는 시네마-그라피가 된다. 이러한 선적인 본성은 <사이코>의 꺾어진 선들과 흑백 대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의 화살표와도 같은 좌표들,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으로 현상화된다. 로메르는 히치콕의 <현기증>을 <의혹은 전망차>에서 보여지는 직선과 원의 강박적인 현시와 비교하며 크레딧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나선의 형상을 설명한다. <현기증>에서 직선과 원은 세 번째 차원, 즉 심도의 매개에 의해 결합한다. 이러한 나선형은 스코티가 차 안에서 그려 보는 회로, 매들린의 목덜미에서 보여지는 머리 다발의 나선형, 그리고 스코티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를 종탑으로 이끄는 계단의 현기증적인 나선형으로 나타난다. 로메르는 이러한 나선형적인 소용돌이가 공간 안에서 여행하기보다는 일종의 시간 안에서의 여행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스코티는 단지 과거로의 탐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로의 나선형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을 만들지만 그 고리는 결코 닫히지 않고 우리를 계속 회상으로 깊게 이끈다. 따라서 <현기증>의 건축학적인 공간들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근거는 시간에서의 방향 잃기의 인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스코티의 능력 마비 상태(현기증)는 공간적인 장에서가 아니라, 시간적인 장에서 발생한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의해 구성되어 있고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미래로 향해 있는 예감이라기 보다는 과거로 향해 있는 회상 (기억 혹은 추억)과 관련된다. 따라서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형의 나이테는 일종의 이미지-크리스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히치콕의 죽음, 고다르 그리고 이미지의 죽음


고다르는 히치콕의 이러한 특성을 영화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히틀러 혹은 나폴레옹 이상으로 실제로 세계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던 대중에 대한 통제력을 영화를 통해 갖고 있었다. 히치콕은 대중을 위해 이미지와 이미지들의 연쇄를 통해 영화가 여전히 예외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했다. 히치콕은,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면, <오명>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열지어선 보르도 포도주병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을 떨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 순수한 영화의 힘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오명>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자넷 리가 베이츠 모텔로 왜 가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한 쌍의 스펙터클들 혹은 풍차를 기억할 것이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들. 만일 당신이 <오명>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아마 포도주병들. 당신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기억 못할 것이다. [반면] 당신이 그리피스 혹은 웰스, 혹은 에이젠슈테인 혹은 나(고다르)를 기억할 때, 평범한 대상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히치콕을 통한 영화적 힘의 위력은 또한 그의 죽음을 영화사적인 사건으로 만들어 낸다. 1980년 4월 히치콕이 죽었을 때, 고다르는 <네 멋대로 뛰어라 Sauve qui peut (la vie)> (1979)를 갖고 칸을 방문했었다. 이 영화는 고다르에게 있어서 오랫동안의 공백을 깨고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히치콕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치콕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전을 표지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시각성에 대한 의심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시각성의 쇠퇴로 정의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시대는 시각성을 억압한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은 내가 첫번재 영화를 만들 때처럼 여겨진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히치콕은 무성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영상의 힘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재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영화를 카프라, 에이젠슈타인과 더불어 대중적인 예술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히치콕처럼 탄생만큼이나 죽음이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히치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차라리 젊은 나이에 죽어 간 무성 영화와 1980년의 히치콕의 죽음이다.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가 만일 인간의 생명과 유사한 나이를 갖고 있다면, 영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영화를 만들려는 욕망을 재발견하고 영화의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을, 이제 늦었지만 시작해야 한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