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적 가치의 정형화에 무딘 편이다. 도식화 내지 해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루함. 마지막 층계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관심의 선행을 빌어 직관적 경험의 충족선에서 대상과의 행복한 거리감을 유지하고픈 무책임함. 정서적 감상선에서 만족하며 인생을 반추하고 때때론 매개와 틀의 깔맞춤에 키득일 수 있음에 만족할 뿐, 예술적 비평을 둘러업을 깜냥도 욕망도 없는 인간이다. 훗날 구원처럼 다가온 영화란 취미를 내 생의 기억의 서랍에서 찾아볼 순간이 온다면, 그저 그 견출지엔 '감상과 감상 그리곤 공유' 라 적혀있길 바랄 뿐이다. 별볼일 없을 수도 있는 '예고편'의 장에 이다지도 거창히 삶의 지향성까지 끌어다 쓰는 이유는 날이 갈 수록 절감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정보의 늪 속을 안전히 헤엄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기 위함이다.
대면 후 나누고픈 마음 뿐이다. 영화란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 단 두가지 즐거움에 집중하고 싶다. 하늘에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을 순수한 애정으로서의 1차적 경험. 그리곤 주체할 수 없는 포만감으로서 보상되는 비옥한 공유지의 경작. 그러한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선 바지런히 단서의 씨앗을 공개적인 장에 뿌림이 마땅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취향적 호기심에 자부심을 느끼는 편이다. 필름속에 박은 듯 세밀히 정물화를 그려낼 재능은 없지만 역마살을 운명삼아, 갖은 정보를 동여맨 후 척박하고 편향된 작금의 취향풍토에 약간의 단비를 흩뿌릴 자신 정도는 있단 소리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손가락 끝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 맹신하는 시대를 살고있다. 이상적 어림짐작 하에서 우리들은 무성한 과실나무 아래에 누워 코앞에 떨어질 '그것'들을 태평스레 배불리 베어물 수 있으리라 믿고있다. 그 과실들 속 가득찬 편향과 독점의 맹독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호기심을 마비시키고 사리분별을 방해하는 편협한 독성들 말이다. 편의가 낳은 나태한 안도감의 스펙트럼은 이전세대가 보여준 치열한 비디오 추젹전에 비하면 초라한 허울일 뿐이다. 발품을 통한 경험적 시야각의 확보가 절실하다.
제 1의 논리에 종속되는 순간 순수성은 휘발된다. 순수한 호기심의 상실속에서 원석을 품은 소수의 뜻깊은 공간들은 굴뚝마저 덮어버릴 정도의 가치없는 광고와 단문을 위한 피상적 전시문구의 폭설에 뒤덮여 소통의 산소부재를 겪고있다. 설상가상으로 영화는 전 국민의 취미인 동시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봉곳 솟아오른 문지방이다. 빈도는 높고 거슬림은 잦다. 이러한 특성은 무의미한 문답의 반복에 가속만을 더해준다. 우리는 거대한 광산앞에서 두세가지 터널만에 집요하리만큼 몰두하고 있다. 호기심과 다양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가치있는 공유가 절실한 시점이다.
다양한 방도중 하나로서 예고편의 재조명에 주목하고 싶다. 영화를 예술로 규정함에 있어 가장 초라한 지위를 갖춘, 트레일러의 제 3자적 일회성을 뻔뻔히 객관성이라 착각하며 끊임없이 발견하고 공유하고 싶다. 강박에 가까운 정보욕으로 인해 다수의 경로와 매력적인 지름길을 발견했다. 앞으론 내 자신이 받는 자극과 호기심의 무게와 형태를 고스란히 이 곳에 모사하고 싶다. 예고편의 모습은 다소 상업적이고 때때론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여건하에서 최상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낸 상품이기도 하니 깡그리 그 가치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같다. 어제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에 주체하기 힘든 호기심을 필사적으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타이틀 조차 생소한 고전부터 내후년을 기약해야할 신작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경계없이 잡아두고 싶다. 대한민국의 극장가라는 곳은 먼지만큼이나 하찮은 다양성을 띄는 장터이니 신작이니 구작이니 어차피 그 감상의 무대는 방구석이 될 가능성이 높을테니.
Chapter.1 아방가르드 혹은 컬트의 부스러기들
지옥 (1960) - 나카가와 노부오
대학생인 시로는 야지마 교수의 딸 유키코와 결혼 약속을 한 날, 친구 타무라와 차를 타고 가던 중 실수로 사람을 치고 도주를 한다. 하지만 자수를 결심한 시로는 유키코와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유키코를 잃는다. 그는 술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유키코와 많이 닮은 화가의 딸인 하숙생 사치코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야지마 교수 부부와 타무라가 시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양로원의 1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로를 방문한다. 그러나 모든 메인 캐릭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은 각자의 죄목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진다. 영화의 전반부는 메피스토와 같은 인물들의 인간적 충돌과 대립을 그리는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반부는 피바다를 비롯하여 불교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지옥 이야기의 현실감 나는 묘사가 인상적이며 독창적인 편집으로 완성되었다. <지옥>은 보는 이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작품임에 틀림없다.(도쿄 필름엑스 카탈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