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험

2016. 8. 1. 11:58 from I​nfluence/Private


며칠 전 한강다리를 건넌 적이 있다. 평소라면 거닐 일이 없는 서강대교 위였다. 그 곳에서 내려다 본 한강의 모습 중 단연 눈에 띄는 건 밤섬의 존재였다. 기억을 되짚어 보니 그 다리 위를 걸은 것은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20대 초반 언제쯤 별다른 목적없이 이곳저곳을 여행할 때 건넜던 기억이 났다. 나는 이 곳을 언젠가 걸어본 경험이 있다.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 당시 이해준 감독이 했던 상상을 못했던 걸까. 한강다리-투신-밤섬-표류. 너무도 명백하고도 매혹적인 요소들이 가득한 현장에서 한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어릴적에는 항상 찰리 카우프만 식의 창조를 창의라 맹신했던 것 같지만 조금씩 다양한 환경과 타인에 대한 이해의 필요를 배워가는 과정 속에서 삶을 살아가는 방식의 다양성과 저마다의 가치에 수차례 놀람을 반복하다 보니 존재하는 것, 당연한 것 속에 숨겨진 무궁무진한 이야기거리의 가능성을 포착하여 이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것이야말로 위대한 스토리텔링의 재능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최근 읽어 본 책 중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미셸 퓌에슈가 쓴 '설명하다'였다. 설명이라는 동작이 지닌 역사적 의미와 소통과정에서 설명이 차지하는 위치를 이야기하고 있는 책이다. 특정한 동사 내지 형용사 하나로 세상살이의 가치를 갈무리하는 모습이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무작정 걷고 보고 들으며 성장해 온 내 20대를 모두 끝마치고 성인기의 한 단락을 전환하려는 현 시점에서 나만의 동작을 떠올려본다면 아마도 '경험하다'가 될 것 같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인 것 같다. 대상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 결국 인간이 스스로의 인격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이를 자극하는 모든 동기는 경험에서 비롯되는 것일텐데 나는 지난 삶의 경험들을 차곡히 몸 속에 쌓아 느낌을 서강대교 위에서 밤섬을 내려다보며 어느정도 정리하게된 것 같다. 그 문장은 다음과 같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해낼 수 있지' 에서 '어떻게 이 생각을 못할 수가 있었지'로 옮겨간 것이 20대의 모든 경험이 내게 건내준 소박한 의문문인 것 같다. 비단 이것은 창작과 창의에 관한 문제 뿐만이 아니다. 발단은 그 곳에서 시작되었지만 사회적, 일상적 분야에 있어서 나라는 사람이 신경쓰고 고려해야 할 부분이 점차 늘어가기만 하는 것을 느끼고 있기에 단순히 어느 한가지 요소에 매몰된 독자적 사고에서 벗어나 주변의 인과관계와 예외의 가능성을 모두 고려한, 보다 성숙한 시각이 몸에 베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저만치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 홀로 빛나는 무엇을 막연히 동경하기 보단 나와 다를 바 없는 이들의 서로 다른 경험에 기반한 그들 각자의 이야기에 더욱 귀기울이게 되는 30대의 시작이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