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끝내는 것은 아이를 뒤뜰로 데려가 총으로 쏴버리는 것과 같아, 카포티가 말했습니다. 은둔자는 늙어가면서 악마가 되지, 뒤샹이 말했습니다. 웃다가 죽은 해골들은 웃어서 죽음을 미치게 한다네, 내가 말했습니다. 


종이가 찢어질 정도로 훌륭한 시를, 용서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쓰고 싶었습니다. 


2011년 이 시집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김언희 ( 요즘 우울하십니까? 中 시인의 말) 







나는 참아주었네


나는 참아주었네, 아침에 맡는 입 냄새를, 뜻밖의 감촉을

참아주었네, 페미니즘을 참아주고, 휴머니즘을 참아주고,

불가분의 관계를 참아주었네, 나는 참아주었네 오늘의 좋

은 시를, 죽을 필요도 살 필요도 없는 오늘을, 참아주었네,

미리 써놓은 십 년치의 일기를, 미리 써놓은 백 년치의 가

계부를, 참아주었네 한밤중의 수수료 인상을, 대낮의 심

야 할증을 참아주었네 나는, 금요일 철야기도 삼십 년을,

금요일 철야 섹스 삼십 년을, 주인 없는 개처럼 참아주었

네, 뒷거래도 밑 거래도 신문지를 깔고 덮고 참아주었네,

오로지 썩는 것이 전부인 생을, 내 고기 썩는 냄새를, 나

는 참아주었네, 녹슨 철근에 엉겨 붙은 시멘트 덩어리를, 

이 모양 이 꼴을 참아주었네, 노상 방뇨를 참아주었네, 면

상 방뇨를 참아주었네, 참는 나를 나는 참아주었네, 늘 새

로운 거짓말로 시작되는 새로운 아침을, 봄바람에 갈라터

지는 늙은 말 좆을, 





잠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후희중입니다


두 눈을 의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후회중이 아니라

후희중


예, 바로 그 

후희 (後戱)

맞습니다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피에타 시뇨레


혀로 

거울을 

핥는다


거울 속의 하느님을 핥는다


혀에 혀를 맞대고 

하느님도

마주 

핥아주신다


못 박힌 혀에 못 박힌 혀를 맞대고


음부 (淫父)와

음모 (淫母)와

음자 (淫子)의


하느님





-  하나뿐인 사람들은 대단합니다. 예술가의 단독성을 존경합니다. 시인 김언희는 하나였습니다. 김언희라는 시는 유일했습니다. 지금은 후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첫 15년은 혼자였습니다. 지독히 직시하는 타입이었습니다. 진실에 도달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이념이나 문화 속에 있지 않았습니다. 섹스와 똥오줌과 시체에 있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노래했습니다. 시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교성인 줄 알았는데 괴성이었습니다. 곡성인 줄 알았는데 환성이었습니다. 적나라하고 처절했습니다. 동시에 경쾌하고 번뜩였습니다. 100살 마녀처럼 지혜롭고 꼬마숙녀처럼 용감합니다. 여자 시인인데도 대단하다? 어떤 남자 시인도 이렇게 못 씁니다. 최근에 네 번째 시집을 냈습니다. 제목이 <요즘 우울하십니까?>입니다. 어떤 시인을 이해하려면 물어야 합니다. 그가 견디는 것과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


2011.05.19 신형철 '하나뿐인 시인에게 묻겠습니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