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령 DVD 서플먼트 (구로사와 기요시, 관객과의 대화 中)


영화를 보기 위해선 당연히 빛이 필요합니다. 빛이 있으면 반대쪽에 어둠이 생깁니다. 이것이 영화의 원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어둠이 영화 전체를 지배하지는 못합니다. 만약 스크린이 전부 어둡다면 그곳에 단지 스크린의 천 조각이 보여지는 것과 다름 없습니다. 텔레비전의 경우 검은 화면이라는 것은 그저 브라운관에 지나지 않습니다. 영화란 단순히, 제 뒤에도 있는 하얀 천 조각에 투영된 빛의 알갱이에 불과합니다. 존재나 세계같은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닌 단순한 빛의 반사에 불과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영화의 존재에 대한 절대적 요소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즉 보여지지않는 것이 소리로서 확실한 존재를 들어내는 영화의 표현은 자주볼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바람같은 것입니다. 바람은 절대로 보이지 않지만 소리로서 바람을 표현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닫혀있는 문의 반대편은 어떨까요. 거기서 작은 소리가 들리거나 뚜벅뚜벅하며 발소리가 들린다면 관객은 문 저편의 세계를 눈치 채고 무언가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하게 되죠. 긴장감을 느끼거나 공포감을 느끼게 됩니다. 이렇게 보면 어둠이 스크린을 지배하여 화면이 까맣게 되어도 소리의 힘을 잘 이용한다면 이것은 스크린에 보여지는 것이 아닌 진짜 어둠이라고 느끼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렇게 해서 영화는 소리를 가지게 된 거죠 영화의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저는 영화에 대한 것은 이런 것밖에 떠오르지 않습니다.






<강령> DVD 에 수록된 관객과의 대화 내용 중 '소리'에 대한 이야기 일부와 구로사와 기요시의 큐어, 강령, 로프트를 하나로 묶어 놓은 트리뷰트 영상을 올려 본다. 이 사람의 영화는 우습지가 않아서 좋다. 호러 장르물을 보며 그 세계관의 정서에 설득 당한 기억은 많지 않았던 것 같다. 장면을 꾸미는 감독의 기지에 흥미를 느낄 뿐 온전히 그 속에 젖어들었던 적은 없었다. 일반적인 호러물들은 장르색을 짖게 띄는 특정 표현방식들을 순차적으로 잇는 과정에서 이야기의 여백들을 고민없이 방치해두는 경향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 어떤 장르보다 홀로 완결성을 성취해야 하는 입장에서 이런 식의 무책임함은 항상 절반의 만족감만을 줬던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작품을 챙겨보는 과정에서 스산한 감동을 느끼게 되었다. 앞서 언급한 아쉬움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극복해낸 감독에 대한 존경심이랄까나. 무엇인가 내 몸을 힘껏 움켜쥐는 듯한 긴장감에 영화 속 모든 시간들에 정신을 빼앗긴듯 하다. 일상의 틀을 훌쩍 뛰어넘는 소재를 다루는 순간에도 누구나 지니고 있을 현대인의 어두운 속내와 가장 일상적인 시야를 배치하며 내 세상의 밖이 아닌 관객의 안으로 안으로 이야기를 밀어넣게 한다. 구로사와 기요시의 소재, 주제, 배경이 촉발한 우리의 감정들은 어쩜이리도 온순하게 감독의 질문에 귀기울이는 걸까. 이야기는 궁금하고 메시지는 서늘하다. 지독히도 평범한 공간들은 불안하다. 작품들을 몇 번 더 보며 고민해볼 문제겠지만 아마 어쩌면 그가 사용하는 소리가 불러일으킨 최면이 아니었을까. '음향'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감독의 이야기를 듣고나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여하튼 거장임은 분명하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