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정류장

2015. 1. 3. 01:17 from I​nfluence/Private





버스정류장을 서성이며 사람들을 구경하곤 한다. 나는 왜 거기에 서있는가. 일단 모두가 멈춰있기에 나와같은 심심한 구경꾼에겐 더할나위 없이 좋은 장소이긴하다.  무엇인가를 하기 위해 모여있지만  가장 멍한 상태로 과정을 허비하는 장소. 그 곳을 들르는 수백 수천의 사람들 중 아무런 목적이 없이 멈춰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그냥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순간이 내 인생의 허비방식과 참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들 내가 무엇인가를 하며 타인들 속에 섞여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난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무표정한 모습으로 저마다의 목적을 위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그들과 겉모습만 같을뿐, 나는 그냥 서있는 거다.  거기다가 그 곳의 사람들은 서로에게 아무런 관심이나 관여가 없다. 타인에 대한 경계가 이토록 적은 장소도 얼마 없으니 내가 꿈꾸는 이상적인 세계관과도 닮아 있는듯 하다. 그토록 몸을 가까이 함에도  불필요한 관심과 경계가 존재하지 않는 장소. 아마도 이런 이유들로 인해 목적없이 그 곳을 서성이는 일이 좋은 것 같다.


가장 심심해보이는 장소지만 의외의 사건들도 벌어지곤 한다. 사람은 좋아하지만 지인들과의 관계에 있어선 꽤나 큰 부담을 느끼는 나에겐 이 장소가 아주 특별하다. 언제나 나의 관심을 끄는건 모르는 사람의 사소한 행동과 첫 발화시점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항시 일들이 벌어진다. 그 경중을 떠나 무엇인가가 일상적인 리듬을 깨고 각각에게 반응을 요하는 순간,  그 때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을 보는게 참 재미있다. 종종 자연스러운 핑계를 삼아 이야기를 걸어볼때도 있다. 들어볼 일 없는 상대의 어투와 음성을 듣는 것도 좋다. 행동과 말의 실체를 나의 짐작과 비교해보는 일도 흥미롭다.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그렇게 잊혀진다. 누군가가 쉬는 시간에 아무 생각없이 핸드폰을 만지며 게임으로 순간을 허비하듯 나도 그냥 그렇게 지나보낸다. 몇번인가 특별하다 할만한 순간들도 있었다. 올 초에는 정류장에서 만난 아주머니에게 밥을 얻어먹고 버스까지 얻어 탄 적이 있었다. 정오 쯤 집을 나서서 수십개의 정류장을 지나치며 6,7 시간 정도를 걸은 날이었다. 너무 멀리왔기에 잔돈이나 빌려 버스비를 모아볼 생각에 말을 걸었던 것인데 놀라울 정도로 무력하고 힘겨운 하루를 보냈던 그 아주머니에게 내가 건 낸 사소한 부탁의 말은 일상의 반복적인 리듬에서 상당히 예외적인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던것 같다. 이런게 좋다. 아마 자신의 자식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을 최근의 우울함을 과거의 화려함 속에 꽁꽁 감춰서 내 앞에 펼쳐놨었다. 버스 안까지 이어졌던 대화는 신비로웠다. 나는 몇정거장을 먼저 내려서 또다시 걸었다. 집 앞 정류장에 곧장 내려버리기엔 그 시간들의 여운이 아쉬웠다. 어릴때부터 느낀것이지만 일상의 구역이란게 무의식 속에 그려져있는 것 같다. 먼 곳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귀가길에서 도착이라는 느낌이 완성되는 구역이 존재하는 것 같다. 여하튼 그 일상의 시작점이 애매했기에 한참을 앞서서 내렸던것 같다. 수원과 용인을 잇는 드넓은 차도의 한 구석을 조용히 걸었다. 


오늘도 일이 있었다. 인적은 드물지만 시외버스와 시내버스가 교차하는 지점이기에 그 정류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내린 자리에서 곧장 다른 차에 올라타곤 한다. 유독 공허한 거리에서 그 정류장만이 북적이는 이유다. 그녀는 버스를 타는 사람이 아니었다. 십여미터 앞에서 만취한 여성이 비틀거리며 택시에서 내렸다. 이내 인도위에 올라와 자빠졌고 한참을 쭈그리고 앉아 흔들거리고 있었다. 정류장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를 바라봤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표정을 하나 하나 보고있었다. 잠시 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그녀는 차도로 나가 아무 차에나 대고 손을 흔들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피로한 금요일의 퇴근길에 그녀에게 도움을 줄 사람은 아무런 목적없이 서있었던 나 뿐이었다. 택시를 타려는 거냐 물으니 그렇다고 했다. 술이 사람을 먹으면 이런 발음이 나오는구나 싶었다. 계속 차도로 진입하려는 그녀의 몸을 한팔로 잡아둔 채 택시를 기다렸다. 아프다. 아프다. 이내 큰 소리를 지른다. 난 앞만 바라보며 택시의 빨간 등을 찾고 있었다. 그녀는 내 팔을 잡고는 선 채로 잠을 청하는 듯 했다. 신기하게도 여성의 몸을 손으로 잡고있음에도 마치 쇳덩이를 쥐고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남자의 몸에 손이 닿아도 이보다는 복잡한 생각이 들듯했다. 아마도 그 순간 그녀와 나는 같은 시간에서 완전히 다른 세계를 사는 사람 같았다. 나를 인지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할 누군가의 몸이 손에 닿는 느낌이 이처럼 무감각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녀가 기억하는 오늘 밤의 시간에선 나라는 존재는 평생 기억되지 못할 것이다. 누군가의 삶에서 전혀 기억되지 못함에도 무엇인가를 함께한다는 느낌이 좋았다.  천성적으로 타고나길 누군가를 도울때 기분이 좋다. 하지만 선의가 해석되는 순간이 기분나쁘기에 좋은 일을 하면서도 신경쓰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기억되지 않는 움직임을 통해 오늘 하루의 생각을 끝마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금방 택시는 나타났고 조수석에 쓰러지듯 앉아있는 그녀는 행선지를 묻는 나의 질문에  '광교' 라는 한마디를 남기곤 기사님과 함께 사라졌다. 찬 벽에 손바닥을 기대고있는 듯한 느낌을 줬던 그녀의 어깨가 앞으로 내 삶에  몇가지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난 오늘 하루도 역시 별 일 아닌 일에 의미를 떠올려보며 나이의 숫자 하나를 더해가고 있다. 새 해다. 아무도 읽지 않을 글을 남기는 이유는 나역시 잘 모르겠지만 올해는 무엇인가 많이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려 하기에 그 연습이자 다짐으로서 끄적였던것 같다. 물론 이런 류의 헛소리는 아니고. 보고 듣고 읽는 것들에 대해 짧은 반응이라도 해야지.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는 정말이지 대단한 표현이다.  김창완 아저씨의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위에 이 표현까지 소중히 얹어서 인생을 회의적이고 즐겁게 살고 싶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