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삼국의 감독들이 각각 한편씩 연출을 맡았던 전주국제영화제 디지털 삼인삼색 2004에서 '봉준호'감독님이 한국대표로 연출하셨던 30분 가량의 단편영화이다. 이 영화는 독특하게도 작품의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화면들을 우리사회 곳곳에 설치된 'CCTV'의 눈을 통해 보여주는 형식을 채택하고 있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의 모습을 띈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공공장소나 개인 가정집, 그 어느 곳에서 'CCTV'를 접하더라도 전혀 어색함이 없는 요즘, 이곳 저곳에 설치된 CCTV에 담긴 특정 '개인'의 모습만을 따로 한곳에 모아본다면, 그것이 바로 그 '개인'의 연대기가 되지 않을까 하는 호기심에서 시작된 영화이다. 


CCTV의 특성상 한 장면을 무조건 한 테이크로 가야하기 때문에 이 작품은 연대기적 흐름으로 구성된 10테이크 가량의 인생'축약집'이라 볼 수있다. 2001년 고속도로 회로 카메라에 찍힌 31살의 백수 '조혁래'의 모습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HARD WORK. 열심히 일을 해보려는 백수 '조혁래'의 모습과... 좌절을 비춰준다. 그 후 조혁래가 걸인이 되기까지의 과정들을 초반에 보여주며  앞으로 차차 늘어갈 '폭력'의 전염성을 암시하는 장면들을 곳곳에 숨겨놓고 있다. 

   

장시간의 테이크로 이루어진 '조혁래'의 인생속에서 언제나 그를 둘러싼 주변부에는 '폭력'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인공'의 주위를 멤돌던 폭력과 범죄의 칼자루는 인생막장에 다다른 그에게 넘어가게 되고, [인플루에자]라는 제목처럼 그 폭력성은 마치 전염되듯이 빠른 속도로 '점점 잔인하게' 변해간다. 그가 저지르는 첫번째 범죄의 모습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를 보여주는듯 우스꽝 스러운 '행태'를 보여준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 수록 그가 범하는 폭력성은 겉잡을 수 없는 수준으로 치닫게 되고, 수법은 점점 잔인하게 변해간다. 관객들은 가벼운 '웃음'과 함께 지켜보던 인간 '조혁래'의 인생이 차차 피빛으로 이글어지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게 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객들은 단지 'CCTV'의 눈을 통해서, 그 과정들을 '조용히' 지켜봐야만 한다는 것이다. 그 과정 속에서 봉감독이 선택한 'CCTV'라는 매체는 더욱 빛을 발한다. 언제나 한결같이 어딘가를 무미건조하게 '촬영'중인 카메라의 모습은 차갑고 냉정하며, 심지어 서운하다 싶을 정도로 무감각하게 비춰진다. 작품의 섬뜩함을 배가 시켜주는 요소라 할 수있겠다.

  

아파트 단지의 놀이터 감시 카메라에서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는 이 작품은 '폭력'의 전염성과 진화의 과정들을 적절한 매체속에 담아낸 섬뜩하고, 기발한 작품이다. '페이크 다큐멘터리'임에도 불구 하고 후반부로 갈 수록 지나치게 극적으로 변해가는 '장면'들은 페이크 다큐로서의 매력을 감하시키는 듯한 아쉬움이 있다. 윤제문씨와 고수희씨의 서늘한 연기가  '섬찟한' 매력으로 다가온 작품 이였다. 봉준호표 영화답게, 한없이 어두우면서도 순간 순간 씁쓸한 '웃음'이 공존하고 있는 작품이였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