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을 지나 곧장 죽음의 그림자 속으로 뛰어든 십대 소년과 썩지 않을 영혼의 젊음으로 그저 육신만을 노화시켜온 70대 소녀의 만남. 할 애쉬비 감독의 71년 작 <해롤드와 모드>는 어찌보면 단순해 보일 수도 있는 극단적 상황세팅과 캐릭터성을 고수하면서도 희귀한 활기의 러브스토리를 자연스레 꽃피워 낸 작품이다. 절망에 다다라 죽음을 쫓던 소년은 설명가능한 세상의 모든 이치로 부터 도망다니며 존재도 모를 이의 장례식을 전전하던 중 스스로 동화 속 세계에 몸을 던진 그녀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 제자리 걸음 같았던 그의 청년기는 성큼 성큼 그녀의 세계 속으로 들어서며 행복한 스텝을 밟게된다. 세상의 중심으로부터 살짝쿵 빗겨나있는 소년이 겪게 될 마법같은 계절의 성장기 정도로 한정하기엔 <해롤드와 모드>가 품에 안은 아름다움이 안쓰럽다. 반세기 가량 벌어진 그들의 물리적 나이는 분명 극적인 소스로서 작품의 메시지에 풍미를 더해주긴 하지만 이것은 상반된 연령대의 캐릭터들이 서로의 결핍과 무지를 일방적인 교훈의 형태로서 위안하기 위해 설치된 도구는 아니다. 앞서가던 이가 손을 내밀어 동동구르던 소년의 발짓을 한 걸음 한 걸음 양지로 이끌어내는 그저 그런 교훈극이 아니란 말이다. 세상은 이해못할 각자의 신념으로 소박한 행복을 상상하던 두 인물이 기막힌 우연으로 같은 길에 들어선, 무척이나 로맨틱하고 꿈결같은 데이트 무비다. 서사의 틀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영화는 결국 특정 시대를 살던 어느 지구인의 소망 혹은 일탈이다. 가벼운 유머코드를 섞어 해롤드와 모드가 살던 시대의 정치-사상적 기운의 엄숙함을 슬쩍 들어내는 부분이 있다. 영화는 그러한 해학을 기반으로 꿈꿔진 러브스토리다.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그 모든 이야기를 이쁘게 포장해준 해방같은 노랫말들. <해롤드와 모드> 는 자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서 두 발을 붙이곤 폴짝 폴짝 귀엽게 뛰어오르는 상상이다. 그 뜀박질은 시대를 조금 앞선 것으로 보인다. 미학적 성숙이나 표현의 도발성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할 애쉬비의 이 사랑스런 영화는 만고불멸의 뻔한 인간적 도리인 관계의 본질적 순수성, 그 행복함의 어마어마한 무게에 대해 미소지으며 물어보고 있다. 40여년 전에 던진 질문에 대해 아직도 우린 망설이고 꿈꾸고만 있으니, 그의 상상은 언제나 앞서있을 것이다. '뭐야 이거 철부지의 유치한 징징거림일 뿐이잖아. 하여간 현실 모르고 뜬구름만 잡는 한심한 놈이구만.' 예상 가능한 꾸짖음에 홀로 조용히 생각한다. 아 오늘도 밤거리를 산책할 때 라디오에서 좋은 음악이나 나왔으면 좋겠다. 어제 디제이가 해준 이야기 덕에 하루가 참 신났었는데... 예술의 대면에 있어 극단적인 구획나눔은 여러모로 소모적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인생의 수 만큼이나 그들 각자의 걸작이 존재한다. 그 어떤 형태의 형식이건 그것이 꼭 예술로 인정받지 못할 지라도 말이다. 난 그냥 그렇게 살란다. 해롤드와 모드 처럼. 뻔하디 뻔했지만 결코 미워할순 없었던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를 보면 '정수'란 표현이 나온다. 이 영화는 내게 순수의 최소치를 지탱해줄 관계에 관한 고마운 '정수'가 될 것 같다.  


9/10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