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열을 따져 무엇하겠냐만은 스릴러 장르를 받아들임에 있어 화려하게 치장된 시각적 설득과 정성껏 지어진 이야기의 몰입 중 후자의 시도가 훨씬 정교하고 독창적인 재능을 필요로 한다고 믿는 편이다. 비단 스릴러 장르 뿐 아니라, 영화가 산업 오락물의 상징으로 올라선 이후 지속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얇게 잘라진 컷들의 숨가쁜 조화와 시청각적 도구의 홍수로서 지탱해온 집중의 과정 속에는 끔찍하리만큼 큰 격차의 완성도의 틈이 존재하기에, 왠지모를 권태와 편견이 생겨버린것 같다. 끊임없는 고민을 통해 형식의 독창성으로서 이야기를 살찌어온 소수의 선구자들에게 민폐를 끼치고있는 나태한 창작자들의 안일한 러닝타임 메꾸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야기와 대사의 흐름만을 내세우며 관객들과 정면으로 맞서려는 용기있는 예술가들의 기특한 반가움에 애정이 갈 수 밖에 없는것 같다. 


극작가로 더 유명했던 데이빗 마멧 감독의 연출 데뷔작인 <위험한 도박 (House of games)> 은 군더더기를 찾아보기 힘든 매끄한 스토리라인의 몸체와 적재적소에 단단하고 부드럽게 자리잡은 대사의 살결로 이뤄진, 흡사 아름다운 나체의 순수한 경외감을 연상시키는 완전한 작품이다. 거기에 조 만테나의 철저하게 영화적인 눈빛과 음성까지 추가하며 꿈틀대는 생명감을 부여하였다. 내게있어, 전 문단에서 언급한 기특한 반가움의 상징이 바로 이 작품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둑한 배경속에 그려낸 밤거리의 윤곽과 종종 홀현히 피어났다 금새 아름답게 흩어지는 연기의 이미지 정도가 느와르풍에 기반한 시각적 지원을 해내곤 있지만 <위험한 도박>의 뼈와 심장은 온통 이야기에 대한 경험, 그리고 관객마저 속여먹으려는 듯한 매력적인 대사의 중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영화는 인생의 권태를 맞이한 어느 성공한 여성의 충동적인 일탈을 사기꾼들의 은밀한 일상속으로 대입시켜 한편의 근사한 성장-범죄 드라마를 완성시키고 있다. 25년이란 세월의 무게가 작품의 외면 곳곳에 상투적인 생채기를 내긴 했지만, 어느 범죄 드라마에 맞서서도 뒤쳐지지 않을 오리지널리티와 대사의 저력을 간직한 작품이라 믿고 있다. 흔히들하는 실수 중에 반짝거리는 단문의 아이디어에 집착해 작품 전체의 균형엔 큰 관심을 쏟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컨셉과 트위스팅에 함몰되어 특정한 씨퀀스만을 위해 이야기의 완결성을 갖추지 못하는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위험한 도박>은 고른 균형감으로서 모든 장면들이 서로를 지원하며 상향 평준화를 지향한다. 언뜻 보기엔 큰 욕심은 보이지 않지만, 영화 속 대사와 점잖은 연출의 모든 조각들을 모아보면 작가출신 연출가의 거대한 야망의 퍼즐이 맞춰질 것이다. 근사한 영화를 마주하고 싶은 관객들이라면 <위험한 도박>을 꼭 보길 바란다. 이것은 단순히 시간을 흘려보내며 이야기를 수동적으로 읽어내리는 경험이 아니다. 작가와 관객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종의 대화이며, 짜릿한 심리전이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