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년간 봤던 영화들 중 가장 사랑스럽고 독특한 개성으로 똘똘뭉친 작품은, 느닷없이 영국에서 날아와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리차드 아요아데 감독의 데뷔작 <서브마린> 이었다. 2010년에 공개된 이 후 선댄스를 비롯한 이곳 저곳의 소박한 영화제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알리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특별한 이유없이 자꾸 시선이 가는 영화였다. 손을 맞잡은 올리버와 조다나가 무심히 정면을 응시하던 한장의 사진. 그 이미지만으로 충분했다. 분명 좋아하게 되리라 직감했었다.





특별할 것 없는 15세 소년 올리버 테이트의 귀여운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들며 흡사 '올리버 테이트 되기'와도 같은 신비한 탑승감을 선사해줬던 <서브마린>은 독창적인 톤과 근례엔 찾아보기 힘든 사적인 진솔함으로 관객에게 다가서며 영국판 웨스 앤더슨 무비란 기분좋은 별칭도 획득한 작품이다. 영화의 전체 무게감과 맞먹을 만한 매력적인 '남과 여'의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최소 향후 10년간은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와 <아멜리에>가 선점하고 있던 사랑스러운 커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내려줄 만한 보물이기도 하다. 요즘까지도 툭하면 돌려보는 영화다.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머리를 말리며 돌려보곤 한다. 자세를 잡고 진지하게 감상하지 않아도 <서브마린>의 공기와 세계관이 소박한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옆에서 돌아가고 있단 느낌에 큰 위안을 받는다. 자꾸 털어 넣는다고해서 더  좋아질건 없는걸 알면서도 흡사 본능처럼 끊임없이 손이 가는 레모나 가루의 마력과도 같달까나.


이토록 소중한 작품을 연출한 재주꾼의 두번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데 어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국 시트콤 <아이티 크라우드>의 모스로 얼굴을 알린 그는 아직까진 연출보단 연기자의 비중이 더 크다. 올해 벤 스틸러와 빈스 본 등의 코미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The watch>에 출연했지만 작품 자체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배우로서 헐리웃 상업영화에 안착하는 일엔 헛발을 딛은 것 같다. 대신 2013년에 공개될 그의 두번째 영화 <The double>은 영국에 적을 둔 작품이긴해도 '제시 아이젠버그'와 '미아 와시코우스카' 등을 주연 캐릭터로 캐스팅하며 리차드 아요아데 월드의 세계적 확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Joe Dunthorne 의 동명소설 <서브마린>을 각색해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이번에도 소설책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 작가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 ! 리차드는 러시아 대문호의 초기작(1846년에 만들어진 2번째 소설)을 기반으로 정신분열과 도플갱어에 관한 어두운 코디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이라곤 원작의 존재, 런던에서 진행된 촬영, 간단한 컨셉, 몇줄의 인터뷰 그리곤 따끈한 두장의 사진이 전부다. <서브마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차드가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로 촬영됐다고 한다. 이번에 공동 각색에 참여한 이는 하모니 코린의 형제인 아비 코린. 아직까지 IMDB에 공개된 시놉시스는 달랑 한줄이 전부다.


A comedy centered on a man who is driven insane by the appearance of his doppleganger.


아직 영화의 정식 시놉을 접하진 못했으니 원작의 스토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예상하는 수 밖에 없겠다. 1846년에 완성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골랴드킨은 승진을 꿈꾸는 평범한 관리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의 미래는 암담해 보인다. 절망에 빠진 골랴드킨은 그것이 어떤 음모와 관련된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에게 극도의 모멸감을 불러 일으킨 사건 이후 그는 거리에서 또 다른 골랴드킨과 마주친다.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 종속관계를 유지하지만, 이 관계는 점차 경쟁자로, 적으로 발전한다. 제2의 골랴드킨은 원조 골랴드킨이 근무하는 동일 관청에서 직책을 얻게 되고, 원조가 실패한 승진의 기회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정신분열 내지 도플갱어로 압축되는 스토리의 외형에 제시 아이젠버그와 리차드 아요아데의 인터뷰를 더해 보자. 지난 5월에 시작된 촬영은 진작 완료되었고 현재는 어느정도 작품의 편집까진 완성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속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배경을 세트로 만들어 도시 전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거기다 도플갱어란 컨셉에 맞게 기본적인 특수효과도 가미되니 확실히 이번 영화에선 자본의 덩치가 불어난듯 싶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장르에 대한 이야기인데 코미디와 호러가 반복적으로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아이러닉한 컨셉에 맞춘 블랙 코미디의 구조에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로 가득한 공포영화의 어두운 톤이 배경이 깔린다고 한다. 인터뷰를 읽다보니 원작의 1846년을 현대적으로 각색함에 있어 그 배경을 평범한 현대 런던이 아닌 독특하고 침울한 별도의 공간으로 상정해 이야기를 꾸며나갈 것 처럼 보인다.    


 



위의 이미지는 몇일전에 처음으로 공개된 <The double>의 스틸샷이다.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무기력한 본체를 연기하고 있는 듯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캐릭터는 슬쩍 훔쳐볼 수 있다. 반가운 것은 두번째 사진에서 제시 옆에 서있는 배우 노아 테일러. 그러니깐 그는 <서브마린>에서 주인공 올리버 테이트의 심약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데뷔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상당수가 이번 신작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매력적인 그녀 야스민 페이지 (조다나)도 함께 한다. 단지 익숙한 배우의 출연이 반가운게 아니다. 독창적인 데뷔전을 치른 감독들이 헐리웃으로 넘어가 메가폰을 잡곤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았던, 그 괴상한 코스로 빠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즐거운거다. 자국 시장에서 규모만 조금 키워 자신의 색을 그대로 유지해갈 수 있단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타인의 삶>을 만든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이상한 헐리웃 데뷔작 <투어리스트>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았었나.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더라도 유지가능한 색과 신선한 가능성만 보여줄 수 있다면 괜찮은거다.  모든 단서를 긁어모은 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겹쳐질만한 영화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에드가 라이트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를 기다리던 설렘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과연 한국의 스크린에 걸릴 수 있을까. <서브마린>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결국 DVD를 살 수 없었다. 그의 두번째 영화를 기다리며 <서브마린>의 트레일러를 한번더 플레이 !























































Posted by Alan-Shore :

김영진 - 러프컷

2012. 11. 25. 00:29 from Cinema/Connection



요즘은 영화에 관한 글들을 잘 읽진 않지만 몇 해 전만해도 꽤나 착실하게 주간지의 비평을 찾아보던 사람이었다. 지금보다 매체도 더 많았고 그만큼의 선택의 폭도 넓었던 시절, 난 영화를 이야기하는 글쟁이들 중에서도 김영진의 비평이 가장 멋지게 느껴졌었다. 깔끔한 문장과 줏대있는 시선이 부러웠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필름 2.0'의 말미 코너 <러프컷>에 큰 동경을 느꼈고 이 글들을 다 읽으면 나 역시 이처럼 멀끔한 글을 쓸 수 있게되지 않을까 ... 라는 말도 안되는 환상을 품곤 매주 그의 글들을 정독 했었다. 허나 항시 자신들이 다루던 영화의 모습과도 같이 '필름 2.0'은 어느날 홀현히 사라져 버렸다. 잡지가 사라지면서 그간의 칼럼과 기사를 보관해오던 웹페이지도 사라지게 되었다. 이상한 의무감이 들었다. 말도 안되는 책무를 껴안고 제 목숨을 내던져가며 이름모를 공주의 목숨을 위해 무작정 모험길에 오르던 어느 동화 속 멍청한 왕자들 마냥 대한민국 웹페이지에 산재해 있는 <러프컷>의 조각들을 모두 모아야만 한다는 다짐을 하게됐었다. 105개의 칼럼과 2개의 인터뷰. 총 107 개의 포스팅으로 꾸며진 김영진의 <러프컷> 블로그는 그렇게 완성됐고, 글들을 한 곳에 모은지 거진 2년의 시간이 지나서야 새삼 기억이 떠올라 이렇게 링크를 걸어본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저 블로그를 개설한 아이디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어차피 저기서 멈춰짐이 숙명과도 같은 모음집에 불과하니 아이디를 기억해낼 필요도 없겠지. 김영진의 글. <러프컷>.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찬찬히 살펴보도록 해보자.  


Rough cut         






Posted by Alan-Shore :


<아모레스 페로스>, <21그램>, <바벨>, <비우티풀> 의 감독 알레한드로 곤잘레스 이냐리투가 뜬금없이 단편 하나를 내놨다. L.A. 댄스 프로젝트인 'Moving parts'의 리허설에 초대 받은 후 연출을 결심했다니 분명 그들의 춤사위를 보며 큰 감명을 받은 것 같다. <Naran Ja> 란 타이틀의 이 12분 짜리 작품은 완벽하게 실험영화의 영역으로 편입돼있다. 어떤 느낌을 받은 것인지 모르겠지만, 작품을 찬찬히 뜯어봐도 1그램의 의도도 추측하기 힘든 난해함으로 가득하다. 초현실적인 구성과 심플한 연출, 도통 시대성을 파악하기 힘든 VHS 스타일의 거친 출력. 솔직히 말해서 맥주 몇잔을 걸친 상태에서 접했기에 끝까지 볼 수 있었던 것이지 맨 정신이었다면 뭔지 모를 찝찝함에 감상을 중도포기하고 말았을 것 같다. 이상한 기록물이 추가됐다. 그간의 연출 스타일과도 완전히 격리된 괴작이다. <바벨>의 황량한 사막 정도가 언뜻 떠올랐을 뿐. 이 경우에 꼭 맞아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확실히 춤이란 행위는 장르와 매체의 틀을 허물어 독보적인 진솔성을 담보해 주는 것 같다.








Posted by Alan-Shore :









기본적으로 감상의 가치는 충분한 영화다. 누구나 한번쯤 감상해볼만한 작품이며, 존재가치나 영화적 완성도에 있어 분명 존중받아야할 영화라 생각한다. 작품에 대한 호의를 분명히 밝힌 상태에서 한가지 치명적 아쉬움을 짚고 넘어가야 겠다. 전작인 <부러진 화살>을 보지 못해서 정지영 감독의 스타일을 잘 모르기 때문에, 본 작품에서 취한 연출적 의도를 정확히 분간해내긴 힘들겠으나 감독의 의지나 방향성과는 별도로 주요 지점에서 감정선의 맥을 끊고 몰입을 저해하는 듯한 상투적인 연출의 배치는 아쉬운 실수 내지 착각이 아니었나 싶다.


한정된 공간안에서 이야기의 대부분을 진행하는 구조를 기준삼아 평하자면 그렇게까지 훌륭한 각본은 아니었으나 시나리오 상의 감독이 구축한 매력적인 캐릭터들과 폭발적인 시너지로서 압도적인 연기를 선보인 배우들의 환영은 '이야기'의 초점을 온전히 육체와 기억으로 고정시켜주며 그러한 단점을 망각토록 유도해준다. 역사의 무게와 배우들의 열연은 결국 <남영동 1985>를 나쁘지 않은 영화로 기억하게 할 것이다.

 

시선의 고정과 영혼을 바친듯한 연기의 나열로 인해 주제적 목표와 영화적 재미는 기준치 이상으로 충분히 획득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낡은 상투성이 목에 걸린 가시마냥 자꾸 신경 쓰인다. 물리적 압박에 숨통이 막혔던 관객들에게 잠시 숨을 돌릴 틈을 주면서, 폭력성에 마비됐던 이성이 그간의 경험적 조각들을 모아 스스로에게 이야기의 가치를 형성하고 의미를 완성시킬 '순간'에 와서 설득력없는 식상함으로 안일하게 대처한게 아닌가싶다. 정말로 주요한 내면의 묘사나 갈등의 순간들을 대처함에 있어 매끄럽게 선을 잇지 못한것 같다.  


러닝타임의 절대 비중을 따져보면 미미한 순간들이긴 해도 이런 투박하고 아쉬운 연결로 인해 '남영동 1985'를 올해의 영화로 꼽지 못할것 같다. 극의 절반을 경과할때쯤 난 확신했었다. 근 2,3년간 본 한국영화 중 <황해> <부당거래> 이후 가장 흥미로운 작품이 될것 같다고. 결정적 상투성과 미적지근한 현재 시점의 묘사로 인해 이 영화는 그냥 2012년 한국영화의 어느 한 순간 정도로 기억될 것 같다. 지옥과도 같은 22일에 대한 묘사들은, 보는 이로 하여금 어깨를 짓누르고 신경에 바람을 불어넣는 듯한 강렬함을 느끼게 해줬다고 생각한다. 허나 노감독의 고정관념일지, 주제에 대한 강박이었는지 모르겠으나 먼지쌓인 시선과 불필요한 부연설명의 존재는 소제의 온도를 오롯이 장르로 연장시킨 차가움도, 뚜렷한 주제 전달을 위한 악몽과도 같은 드라마의 뜨거운 열변도 당당히 독립시키지 못한채 어중간히 섞여버린 인상이다. <남영동 1985>의 존재가치를 부정할 만한 흠은 아니지만 분명 영화적 포만감엔 아쉬움이 남는 틈이라 할 수 있다. 


<남영동 1985> 의 가치는 배우와 그 연기력이 집중적으로 파고든 폭력에 대한 기억이다. 중점적으로 응시하고 있는 '고문'이란 행위를 표현함에 있어 특별한 영화적 장치를 활용하진 않고 있다. 대부분이 무기력하게 바라보도록 꾸며져 있다.  특정 장르영화의 팬이라면 세포하나 미동하지 않을 수위지만, 체감 수위는 예상외로 높은 편이다. 역시 중요한건 표현을 담는 그릇인것 같다. 고작 5대를 거슬러 올라가면 닿을 수 있는 근현대사의 생생한 기록이기에, 단순한 시각적 경험을 넘어선 정신적 자극이 박원상의 수난을 보다 지독하고 자극적으로 받아들이도록 만드는것같다. 막연하게 귓동냥으로 들어온 독재의 그림자 속으로 온전히 몸을 내던지는 경험의 가치는, 언제나 과거사 문제에 안일하게 뭉뚱그려온 우리네 현실을 향해 던지는 강렬한 사회적 메시지였다.

영화가 공개된 시기 때문에 이 작품의 정치적 의도에 대한 외부적 힐난이 존재할 것이다. 개개인이 어떤 방식으로 받아들일진 모르겠지만 이건 분명 인권과 경각에 대한 범위 안에서 순수하게 받아들일 여지가 충분한 작품이다. 선동으로 치부하고 감상도 하기 전에 낙인을 찍어 존재를 부정하기엔 너무도 잔악한 역사였고 충분히 곱씹어볼만한 부끄러움 이었다. 정견을 가지고 흑백논리로 득과 실을 논하기엔 너무나 심한 과정이었다. 정치를 마치 패션처럼 전시하며 극단적인 배타성을 띄는 몇몇 젊은이들에게도 단지 '인권'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사실 각본만 가져가서 다른 감독이 연출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인터뷰를 읽어보니 감독과 배우들간의 신뢰가 없었다면 완성되기 힘든 영화였던것 같다. '왕년의 스타감독'이 쏟아내는 푸념과 한탄의 다큐 <영화판> 을 통해 오늘날 노감독이 영화를 만드는 일에 대한 고민을 내던졌던데, <남영동 1985> 는 그에대한 충분한 자답이 됐을것 같다.


2004년으로 넘어가는 시점부터 엔딩 크레딧을 메우고 있는 고문 피해자들의 증언까지 전부 들어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후일담을 꾸미더라도 <타인의 삶> 같은 완결성이 아니라면 이전의 메시지와 감각을 둔화시킬 뿐 그닥 좋은 매듭을 짖긴 힘들다. 특히나 이처럼 강렬한 직선의 영화라면 더욱. 그리고 군부정권에 혹사당한 피해자의 증언들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방식은 누군가에게 굉장한 거부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으며, 영화적 감흥의 자아성찰을 둔화시킬 위험이 있다. 22일의 '팩트'에 집중했다면 더욱 근사한 영화가 됐을 것이다. <남영동 1985> 의 독특한 특성은 지적을 함에 있어 기묘한 부담감이 따른다는 것이다. 영화적 완성도와 기술적 측면에 비중을 두고 생각을 펼치다 보면 왠지모를 죄책감이 달라 붙는다. 옳은 시선은 아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담감이다. 


고문 포르노가 판을 치는 영화판에서 '고문'의 이미지가 긍정적인 효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쉽지않은 경험을 선사해준 감독과 배우들에게 감사함을 표하고 싶다. 생각해보면 아직까지 이런 영화가 없었단 사실이 의아하기도 하다. 간격의 길이만 다를 뿐 어떤 방식으로든 반복될 역사이기에, 과거사에 둔감한 젊은이들과 우리 뒷세대에게 의미있는 인권 교육의 장이 될 것 같다.



[ 505호실에 발을 딛고 있는 모든 캐릭터가 만족스러웠다. 무엇보다 박원상. <남영동 1985>를 박원상의 영화라 해도 서운해할 사람은 없을것같다. 그리고 이경영. 이토록 좋은 배우가 왜 원조교제를 해서 찬란하게 빛날 수 있었던 필모그라피에 허무하게 구멍을 냈는지...]   




 

 

 

 

 


Posted by Alan-Shore :

예술적 가치의 정형화에 무딘 편이다. 도식화 내지 해부에 대한 참을 수 없는 지루함. 마지막 층계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 무관심의 선행을 빌어 직관적 경험의 충족선에서 대상과의 행복한 거리감을 유지하고픈 무책임함. 정서적 감상선에서 만족하며 인생을 반추하고 때때론 매개와 틀의 깔맞춤에 키득일 수 있음에 만족할 뿐, 예술적 비평을 둘러업을 깜냥도 욕망도 없는 인간이다. 훗날 구원처럼 다가온 영화란 취미를 내 생의 기억의 서랍에서 찾아볼 순간이 온다면, 그저 그 견출지엔 '감상과 감상 그리곤 공유' 라 적혀있길 바랄 뿐이다. 별볼일 없을 수도 있는 '예고편'의 장에 이다지도 거창히 삶의 지향성까지 끌어다 쓰는 이유는 날이 갈 수록 절감하게 되는 무시무시한 정보의 늪 속을 안전히 헤엄치기 위해 몸과 마음을 가벼이 하기 위함이다. 


대면 후 나누고픈 마음 뿐이다. 영화란 대상을 바라봄에 있어 단 두가지 즐거움에 집중하고 싶다. 하늘에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을 순수한 애정으로서의 1차적 경험. 그리곤 주체할 수 없는 포만감으로서 보상되는 비옥한 공유지의 경작. 그러한 존재가치를 스스로 증명하기 위해선 바지런히 단서의 씨앗을 공개적인 장에 뿌림이 마땅하단 생각이 들었다. 나 자신의 취향적 호기심에 자부심을 느끼는 편이다. 필름속에 박은 듯 세밀히 정물화를 그려낼 재능은 없지만 역마살을 운명삼아, 갖은 정보를 동여맨 후 척박하고 편향된 작금의 취향풍토에 약간의 단비를 흩뿌릴 자신 정도는 있단 소리다. 우리는 세상의 모든 정보를 손가락 끝으로 접할 수 있으리라 맹신하는 시대를 살고있다. 이상적 어림짐작 하에서 우리들은 무성한 과실나무 아래에 누워 코앞에 떨어질 '그것'들을 태평스레 배불리 베어물 수 있으리라 믿고있다. 그 과실들 속 가득찬 편향과 독점의 맹독은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호기심을 마비시키고 사리분별을 방해하는 편협한 독성들 말이다. 편의가 낳은 나태한 안도감의 스펙트럼은 이전세대가 보여준 치열한 비디오 추젹전에 비하면 초라한 허울일 뿐이다. 발품을 통한 경험적 시야각의 확보가 절실하다.


제 1의 논리에 종속되는 순간 순수성은 휘발된다. 순수한 호기심의 상실속에서 원석을 품은 소수의 뜻깊은 공간들은 굴뚝마저 덮어버릴 정도의 가치없는 광고와 단문을 위한 피상적 전시문구의 폭설에 뒤덮여 소통의 산소부재를 겪고있다. 설상가상으로 영화는 전 국민의 취미인 동시 예술과 상업의 경계에 봉곳 솟아오른 문지방이다. 빈도는 높고 거슬림은 잦다. 이러한 특성은 무의미한 문답의 반복에 가속만을 더해준다. 우리는 거대한 광산앞에서 두세가지 터널만에 집요하리만큼 몰두하고 있다. 호기심과 다양성 그리고 미래를 위한 가치있는 공유가 절실한 시점이다. 


다양한 방도중 하나로서 예고편의 재조명에 주목하고 싶다. 영화를 예술로 규정함에 있어 가장 초라한 지위를 갖춘, 트레일러의 제 3자적 일회성을 뻔뻔히 객관성이라 착각하며 끊임없이 발견하고 공유하고 싶다. 강박에 가까운 정보욕으로 인해 다수의 경로와 매력적인 지름길을 발견했다. 앞으론 내 자신이 받는 자극과 호기심의 무게와 형태를 고스란히 이 곳에 모사하고 싶다. 예고편의 모습은 다소 상업적이고 때때론 본질을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겠지만, 자신의 여건하에서 최상의 고민을 통해 만들어낸 상품이기도 하니 깡그리 그 가치를 무시하긴 어려울 것같다. 어제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기에 주체하기 힘든 호기심을 필사적으로 기록해보고자 한다. 타이틀 조차 생소한 고전부터 내후년을 기약해야할 신작에 이르기까지, 아무런 경계없이 잡아두고 싶다. 대한민국의 극장가라는 곳은 먼지만큼이나 하찮은 다양성을 띄는 장터이니 신작이니 구작이니 어차피 그 감상의 무대는 방구석이 될 가능성이 높을테니.







Chapter.1 아방가르드 혹은 컬트의 부스러기들




지옥 (1960) - 나카가와 노부오


대학생인 시로는 야지마 교수의 딸 유키코와 결혼 약속을 한 날, 친구 타무라와 차를 타고 가던 중 실수로 사람을 치고 도주를 한다. 하지만 자수를 결심한 시로는 유키코와 택시를 타고 가다 교통사고로 유키코를 잃는다. 그는 술로 시간을 보내던 중 어머니가 병에 걸렸다는 소식에 집으로 돌아온다. 거기서 유키코와 많이 닮은 화가의 딸인 하숙생 사치코를 만난다. 그러던 어느 날 야지마 교수 부부와 타무라가 시로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양로원의 10주년 기념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로를 방문한다. 그러나 모든 메인 캐릭터들이 모인 가운데 그들은 각자의 죄목에 따라 지옥으로 떨어진다. 영화의 전반부는 메피스토와 같은 인물들의 인간적 충돌과 대립을 그리는 “살아있는 지옥”이라고 할 수 있으며 후반부는 피바다를 비롯하여 불교 그림에서 영감을 얻은 지옥 이야기의 현실감 나는 묘사가 인상적이며 독창적인 편집으로 완성되었다. <지옥>은 보는 이에게 놀라움을 선사할 작품임에 틀림없다.(도쿄 필름엑스 카탈로그)







코야니스카시 (1983) - 갓프레이 레지오


카시 삼부작의 첫 작품. ‘코야니스카시’란 호피 족 인디언 말로 ‘균형 깨진 삶(Life Out of Balance)'라는 뜻이다. 뚜렷한 내러티브도 대사도 없이 그저 음악과 영상으로만 되어 있는 이 영화는, 고대 인디언들이 그린 벽화에서 시작한다. 이후 광활하고 경외로운 대자연, 그리고 인간이 약간의 가공을 가한, 노동하는 인간과 함께 하는 자연을 그린다. 이후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굴러가는 도시를 묘사하는 씬으로 오면, 자연과 완전히 등을 진 채 오롯이 인간이 만든 인공적인 환경 속에서 속도와 파괴에 지배당하는 인간의 도시문명이 대비된다. 도시 문명의 속도는 점점 심해져 클래이맥스에서는 거의 기하학적 무늬로 표현되며 현기증을 준다.


영화는 패스트 모션과 슬로우 모션을 적절히 사용한다. 자연경관을 찍은 씬에서도 패스트 모션은 사용되지만, 이것은 각종 구름의 빠른 모양들을 아름답게 표현할 뿐 자연경관 그 자체는 언제까지나 그대로, 변함없이 존재한다. 그러나 도시문명에서의 패스트 모션은 완벽한 혼란을 보여준다.


슬로우 모션은 물결의 흐름, 바다의 모습 등에서 사용되었다. 은빛으로 반짝이다 못해 거의 방송중이 아닌 TV화면의 잡음처럼 보이는 물결빛 역시 기하학적 아름다움을 주지만, 도시문명에서 보인 것처럼 ‘혼란’이나 ‘현기증’과는 거리가 멀다. 도시 문명에서의 슬로우 모션은 인간의 도시문명과 ‘전쟁’과의 관계, 그리고 ‘파괴’로 치닫는 광경을 표현하는 데에 사용된다. 이러한 화면이 필립 글래스의 아름답고 영적인 음악과 어떻게 서로 조응을 이루는지 살펴보는 것도 이 영화 감상의 키포인트다. (부천 판타스틱 영화제 소개글)








포비든 존 (1982) - 리처드 엘프만


The bizarre and musical tale of a girl who travels to another dimension through the gateway found in her family's basement.


A mysterious door in the basement of the Hercules house leads to the Sixth Dimension by way of a gigantic set of intestine. When Frenchy slips through the door, King Fausto falls in love with her. The jealous Queen Doris takes Frenchy prisoner, and it is up to the Hercules family and friend Squeezit Henderson to rescue her.







그림자들 (1959) - 존 카사베츠


베니스 영화제 비평가상(1960). 카사베츠는 60년대 가장 중요한 미국 작품으로 꼽히는 이 데뷔작에서 뉴욕의 타임 스퀘어라는 사막을 비추는 네온 불빛 속의 부유하는 밤의 사람들 -여자들, 재즈 뮤지션, 비트족- 의 맥박을 재즈의 즉흥연주처럼 담아내고 있다.







베니싱 (1988) - 게오르지 슬루이저


Rex and Saskia are on holiday, a young couple in love. They stop at a busy service station and Saskia disappears. Rex dedicates the next three years trying to find her. Then he receives some postcards from her abductor, who promises to reveal what has happened to Saskia. The abductor, Raymond Lemorne, is a chilling character to whom Rex is drawn by his intense desire to learn the truth behind his lovers disappearance. The truth is more sinister than he dared imagine.







로슈포르의 연인들 (1967) - 자크 데미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뮤지컬로 보이지만, 극도의 화사함이 기괴하게 느껴져서 이 곳에 동봉. 어느 외국 매체의 글을 읽다 봉준호의 <괴물>을 컬트영화라 칭하는걸 봤다. 어차피 모호한 기준의 영역이니 수용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제멋대로 받아들여도 괜찮을것 같다.]


로슈포르의 쌍둥이 자매 델핀과 솔랑쥬는 무용과 피아노를 가르치며 언젠가 다른 곳에서 멋진 사랑을 하게 되리라 꿈꾸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미국인 작곡가 앤디가 친구 시몽을 찾아 로슈포르에 오는데…. 실제 자매인 카트린 드뇌브와 프랑수아즈 도를레악이 쌍둥이 자매로 출연하여 매혹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뮤지컬 영화. 로슈포르 거리 곳곳에서 펼쳐지는 춤과 노래의 향연 또한 잊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헤드 (1968) - 봅 라펠슨


The Monkees are tossed about in a psychedelic, surrealist, plotless, circular bit of fun fluff.


Running in from seemingly nowhere, Micky Dolenz, Davy Jones, Michael Nesmith & Peter Tork - better known collectively as The Monkees - disrupt a bridge opening ceremony. From where and why did they come to disrupt the proceedings? They were filming a series of vignettes in several different genres, including a wild west sequence, a desert war sequence, a Confederate war sequence, and a science fiction sequence. They disagree with much of what is happening around them, and try to figure out how to escape the oppression they feel - symbolized by a big black box in which they are seemingly imprisoned - by the forces around. That oppression is often shown in the form of "The Big Victor Mature".







익시젼 (2012) - 리처드 베이츠 주니어 (노골적으로 폭력적이며 때때로 잔혹하다)


폴린은 다른 사람들을 수술하는 환상에 젖어 살고 있다. 그녀의 끔찍한 환상은 친구들과 가족들을 불편하게 하고 낭포성 섬유증을 앓고 있는 여동생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고 급기야 그녀의 집착은 피와 살점이 낭자한 현실로 옮겨지는데…10대 소녀의 성장통과 악몽 같은 내면이 환상과 현실을 오가는 이미지로 펼쳐지는 독특한 스타일의 영화.






스페셜 (2006) - 할 하버만, 제레미 패스모어


주차 단속원 레스는 개발 중인 우울증치료제 연구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삶을 얻게 된다. 바로 약의 부작용으로 인해 슈퍼 영웅의 초능력을 갖게 된 것. 그는 보잘 것 없던 삶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슈퍼 영웅이 되기로 하지만 그건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 검은 옷을 입은 제약회사 직원들이 레스를 추적하면서 일은 더욱 복잡해져 가는데...<스페셜>은 소수의 특별한 사람 혹은 우리 모두에 관한 영화다.







스톱 메이킹 센스 (1984) - 조나단 드미


An innovative concert movie for the rock group The Talking Heads.


David Byrne walks onto the stage and does a solo "Psycho Killer." Jerry Harrison, Tina Weymouth and Chris Frantz join him for two more songs. The crew is busy, still setting up. Then, three more musicians and two back-up singers join the band. Everybody sings, plays, harmonizes, dances, and runs. They change instruments and clothes. Bryne appears in the Big Suit. The backdrop is often black, but sometimes it displays words, images, or children's drawings. The band cooks for 18 songs, the lyrics are clear, the house rocks. In this concert film, the Talking Heads hardly talk, don't stop, and always make sense.









스토리 텔링 (2001) - 토드 솔론즈


Storytelling is comprised of two separate stories set against the sadly comical terrain of college and high school, past and present. Following the paths of its young hopeful/ troubled characters, it explores issues of sex, race, celebrity and exploitation







체인드 (2012) - 제니퍼 린치


8살난 팀과 그의 엄마는 연쇄살인범인 택시기사 봅에게 납치를 당한다. 봅은 팀이 보는 앞에서 엄마를 잔인하게 살해한다. 하지만 이것은 팀의 시련의 시작일 뿐이다. 봅은 팀을 집에 가둬 놓고 자신이 납치해 살해한 여성들의 시체를 치우게 한다. 별 저항없이 봅이 시키는 대로 하는 팀, 어느덧 세월이 흘러 청년이된다. 연쇄살인범이 자신이 납치한 어린아이를 또 다른 연쇄살인범으로 키우려고 한다는 <사슬>의 주제는 수많은 다른 연쇄살인범 영화와의 차별성을 가지고 있다. 이 특이한 소재를 제니퍼 린치 감독은 관객들이 영화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잘 소화해 낸다. 그녀의 전작 <남자가 여자를 사랑할 때>에서 보여준 독특하면서도 기괴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그녀의 연출력은 이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아무리 소재가 특이하고 흥미롭다 한들 어떤 감독이 연출하는지에 따라 작품의 완성도는 달라진다. 관객들로 하여금 처음부터 마지막 엔딩까지 흥미를 잃지 않고 작품에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 제니퍼 린치의 연출력은 성공적이라고 볼 수 있다. (제 17회 부산국제영화제)







알프스 (2011) - 요르고스 란티모스


<송곳니>(2009, 칸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대상)로 급부상한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최신작. 간호사, 체조선수, 그의 코치 등이 결성한 ‘알프스’라는 이름의 조직이 있다. 이 조직은 유족들의 돈을 받고 그들의 딸, 아내, 애인 등 죽은 자들의 빈 자리를 대신 채워주는 일을 한다. 현대 사회 속 개인의 고독과 필요를 개성 있게 다룬 수작.








자두 치킨 (2011) - 마르얀 사트라피, 빈센트 파로노드 


마지막 영화는 유일하게 감상을 마친 작품이다. 참으로 아름답고 묵직한 이야기다. 찰리 카우프만이 프랑스로 건나가 <아멜리에>의 스탭들을 데리고 영화를 찍는다면, 아마... 이것과 비슷한 모습이 아닐까.


Nasser-Ali, a talented musician, loses the will to live after his wife breaks his beloved violin during an argument. He searches for a replacement, and finding none that sounds quite the same, he vows to die. Eight days later, he does. This is the story of his last week of life, where we see flashbacks and flash forwards of his previous life and his children's futures. We also see appearances of a nude Sophia Loren as well as the angel of death, Azarel. As we see his life, we realize exactly why he chose to end it and the profundity of this choice.
























Posted by Alan-Shore :

작품성만을 따져본다면 결코 추천해줄만한 다큐는 아니다. 하지만 유럽, 거기다 존재 자체가 낯선 오스트리아 감독의 모습을 이만큼 자세히 구경할 수 있는 기회가 어디에 또 있겠는가. 우리는 수상 실적과 위대한 작품들의 잔영만으로 그들을 추측할 뿐이다. 여기 미카엘(미하엘) 하네케 감독의 영화적 일상에 바짝 따라붙어 기록해낸 작품이 있어 소개한다. 2005년작 <24 Realities per Second>. 작품에 대해 기대가 아닌 호기심에 대한 응답으로서 감상해보시길.  











Posted by Alan-Shore :





저수지의 개들





영화를 이루고있는 초와 분들의 집합들 중 가장 독립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나타낼 수 있는 모임은 극의 도입부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는 오프닝 크레딧 - 타이틀 시퀀스 파트일 것이다. <세븐> <파이트 클럽> <밀레니엄> 등의 작품에서, 이제 막 객석에 앉은 관객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으며 압도적인 강렬함으로서 이야기의 문을 열어온 데이빗 핀쳐는 '타이틀 시퀀스'를 설명함에 있어 이와같은 개념을 사용하였다고 한다. 어떠한 경로를 통해, 무슨 편견을 가지고 티켓의 값을 지불하였건 극장에 들어서기 전까지 관객들에게 주어지는 정보들은 순수한 연출자의 '알림'이 아닌 자본과 상업의 가이드 라인에 따른 보편적 홍보물일 수 밖에 없다. 그러하기에 자신의 작품을 선택한 다양한 동기와 목적의 불특정 다수에게 본격적인 이야기의 시작에 앞서 순전히 감독의 시선으로서 새롭게 던져주는 영화 속 '트레일러' 내지 의도적인 편견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이 타이틀 시퀀스란 것이다.  


물론 맨 위의 걸려있는 <저수지의 개들>과 같이 아주 심플한 효과와 독특한 컨셉만으로 가볍게 몸을 푸는 경우들도 있을 수 있다. 껄렁패들의 간지나는 슬로우 모션으로 상징되는 <저수지의 개들>은 물론이고 끊임없이 우에서 좌로 향해가는 팸 그리어의 모습을 따라가며 영화 전반의 서사를 압축하고 암시하는 듯한 <재키 브라운>의 귀여운 시선 역시 극과 도입부의 살결에 별다른 차이를 강조하지 않는 타란티노만의 방식이다. 조엘 슈마허가 <폴링다운> 에서 선보인 후덥지근한 강박적 시선이나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포레스트 검프를 소개하는 살랑살랑한 봄바람같은 오프닝 시퀀스 모두 원테이크의 방식을 십분 활용해 작품의 방향성을 유난스럽지 않게 제시하는 근사한 케이스라 할 수 있다. 





포레스트 검프




하지만 앞서 언급한 데이빗 핀처의 경우처럼 (소셜 네트워크는 예외지만) 대부분의 작품에서 크레딧 시퀀스만을 위해 별도의 전문가를 고용하는 경우들도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특수효과 내지 애니메이션 기법을 활용해 보다 독립적으로 영화의 컨셉을 소개하는 방식이라 할 수 있는데, 앞서 소개한 방법이든 후자의 방식이든 해당 작품에 적합한 선택을 했다면 별다른 카테고리의 구분없이 그 창의력과 미학적 존재가치를 인정하고 즐겁게 그 세계에 빠져들면 그만인 것이다. 카일 쿠퍼나 솔 바스의 명성높은 크레딧 시퀀스 부터 이름 모를 누군가의 독창적인 작업에 이르기까지, 영화사를 화려하게 수놓은 감독과 크레딧 디자이너들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놓은 웹페이지가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Art of title 은 자신의 이름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듯한 공간이다. 고화질의 인상적 타이틀 시퀀스들을 비공개 동영상으로 올려놔 깔끔한 감상의 최적화된 환경을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컨셉에 맞춰 각종 타이틀 시퀀스들을 헤쳐 모이게 만든 특별 영상들도 재미난 구경거리이다. 타이틀 시퀀스의 미학에 빠져든 이라면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천상 '낙원'이다.   

     


       












Posted by Alan-Shore :





둘째가라면 서러운 영화광 김홍준. 한예종 교수이니 <장미빛 인생>의 감독이니 이런 저런 복잡한 타이틀을 다 무시하더라도, 영화에 대한 열정과 애정만으로도 충분히 주목할만한 인물다. 그런 그가 영화음악 프로그램에 나와 매주 영화를 소개해 줬(었)다. 일상처럼 들러붙어 있기에 이따금씩 그 가치를 무시하기 쉽상인 라디오 전파 속 전문평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동진의 드넖은 취향적 스펙트럼에 주목해야 하며, 누군가는 분명 어디선가 임진모의 음성을 녹음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매주 김혜리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 문화적 체험의 시야범위를 자문해본다면 분명 우리의 양식의 주머니는 그 전날보다 두둑해질 것이다. 허나 매일같이 꾸겨넣기에 그 소중함을 알아차리기 힘든 쌀밥마냥 난자리가 뵈기 전까진 그 가치를 제대로 평가하기 힘든가 보다


다행히도 온전히 붙잡아둔 자료가 있어 소개해보고자 한다. 아래의 음성들은 MBC 라디오 <이주연의 영화음악>속 코너 <고전 영화의 발견>이다. 스스로에게 '광'내지 '필'이란 꼬리를 달 정도의 사람들이라면 마땅히 알고 있을, 심지어 대부분은 보았을 작품들을 20 ~ 30분 가량 소개해 주는 시간이다. <모던 타임즈>를 시작으로 <그랑블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대의 명작들을 꺼내들며 그에 얽힌 이야기와 보다 영화를 즐겁게 감상할 수 있는 트리비아들을 슬슬 흘려주신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다. 3년만 지나봐라, 의외로 영화에 대한 새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유익함을 보증한다. 언젠가 멍하니 방바닥에 누워 시간만 때울 타이밍이 찾아온다면 꼭 한번씩 들어봤으면 한다.      





















찰리 채플린 - 모던 타임즈 (1936)





뤽 베송 - 그랑블루(1988)





빅터 플레밍 - 오즈의 마법사(1939)





스탠리 큐브릭 - 배리 린든 (1975)





아키 카우리스마키 - 레닌그라드 카우보이 미국에 가다 (1989)





리차드 레스터 - 하드 데이즈 나이트 (1964)





세르지오 레오네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더 웨스트 (1968)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1984)





샘 페킨파 - 관계의 종말 (1973)





하길종 - 바보들의 행진 (1975)





리를리 스콧 - 블레이드 러너 (1982)





스탠리 도넌 / 진 켈리 - 사랑은 비를 타고 (1952)





루이 말 - 사형대의 엘리베이터 (1958)





임권택 - 서편제 (1993)




알프레드 히치콕 - 현기증 (1958)





장 콕토 - 미녀와 야수 (1946)





미야자키 하야오 -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1984)





장국영 (1956 ~ 2003)





엘리자베스 테일러(1932 ~ 2011)








Posted by Alan-Shore :



가장 흔히 듣는 질문 '요즘 괜찮은 영화 뭐있어?' 그러나 얼마전 이 질문을 받아든 순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새삼 자각했단듯이 머릿속으로 자답할 뿐이었다. 확실히 요즘엔 영화를 안보는구나. 이유없이 빠져든 대상이었기에 시들해진 지금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대리만족이나 도피보단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치를 고민하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현실적인 상념의 과정속에 부자연스런 환상을 뿌리리라 근심하기 때문일까. 아예 안보진 않아도 확실히 이전보단 빈도가 준것만은 사실이며 자연스레 이곳에서 할 이야기거리도 부족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해 충동적으로 행한일이 있었다. 5년전 광화문의 어느 극장에서 나를 치유했줬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금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이었다. <카모메 식당>은 영화를 대함에 있어 전환의 기점이 아닌 유보의 독려로서 잠시 모든것을 내려놓고 부담을 덜어내라는듯 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사실 영화를 공유하는 방식과 능력에 있어 많은 회의를 느끼는 요즘이다. 하늘에 맹세코 나는 영화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소개하는 방식과 핵심들을 보고있자면 수사를 위한 문장쌓기, 투명하고 직관적인 감상에 대한 흔해빠진 서술의 반복뿐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웹상에서 범람하고 있는 의미없는 소문장들의 전시만을 위한 전시를 눈살찌푸리며 바라보면서도 정작 가이드로서의 고민보단 형식만을 메우기 위해 핵심과 진심을 챙기지못한 내 자신의 이중적인 태도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주변의 사람들에 대하여, 앞날에 펼쳐질 일상들에 대하여, 불안까진 아니여도 호기심어린 고양이 눈으로 생각들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문제들이 해결된 후에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취미인으로서의 봉사,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영화전문 블로거가 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당장에는 힘든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장 이곳의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이전보다는 고른 호흡으로 허술한 생각보단 명확한 자료와 의미있는 진술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진심' 말이다. 강박과 허식을 덜어낸 진심어린 나만의 공간. 생각과 경험을 정성스레 쌓고싶다.


슬슬 마무리다. <카모메 식당>을 감상한 후 여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블로그의 완결성을 위해 미처 신경쓰지 못한 나의 또다른 취미생활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영화 뿐 아니라 나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는걸 좋아한다. 오히려 짧은 템포속에 기발한 사고들이 가득 들어찬 영상과 멜로디 속에서 영화 이상의 활력과 영감을 얻는 편이다. 그래서 내 맘 한켠 어딘가의 목 좋은 자리를 찾아 소박하게나마 나만의 <카모메 식당>을 오픈했다. 거창할 것 없이 그냥 이곳 블로그를 임시적으로 보수확장 하고자 한다. 현실적 여유가 완성되기 전까진 포스팅의 완결성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게시물들은 단지 제목과 대상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우연하게 발견한 어느 소담한 나무의 시원한 그늘처럼 종종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슬쩍 기대어 일상의 바쁜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당초 끌고오던 진심에 대한 고민에 <카모메 식당>에서 배운 여유의 덕목을 살포시 올려본다. 그렇게 불안과 취향을 달래본다,


그래도 이 모든 생각들을 한편의 영화를 통해 결론지을 수 있었으니 영화는 내게 있어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이야기하는 방식의 절실함을 알려준 <그을린 사랑>. <차가운 열대어>를 통해 영혼강탈자의 영화적 매혹을 일러준 소노 시온 감독. 떠나가고 남은 것들의 소중한 눈물들 <굿바이 그레이스>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실현가능한 범위내에서 가장 역동적인 살냄새를 풍겨주며 내 맘속에 들어온 돈 루스 감독의 <해피 엔딩>. 최근에 내 마음을 움직인 몇편의 영화들을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래의 영상은 본문을 관통하는 정서의 핵심이다. 영화의 엔딩을 함부로 올려선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지만 많은 것들을 일러준 순간으로서 이 글과 맥을 함께하는 씬이기에 붙여봤다. 감상여부는 스스로 판단해서. 그런데 정말이지 훌륭한 마무리 아닌가.

 


Posted by Alan-Shore :



다큐멘터리 장르를 좋아한다. 극영화에 비해 표현의 상한선이 분명히 정해져 있기에 여러모로 한정적인 제약이 따라붙긴 해도 현실과 일상의 결을 따라 걷다 마주하게 되는 감동과 자성의 울림 속에는 감히 극화된 이야기들은 따라잡기 힘든 넓고 진한 감정적 파장이 숨겨져 있기에, 굳이 커다란 환상이 없더라도 내 스스로를 꿈꾸고 울게 만드는 것 같다.


길을 걷거나 밥을 먹다가, 가끔씩 근례에 극장에서 봤던 영화들을 떠올려 볼 때가 있다. 그때마다 유독 선명히 그려지는 상들은 누군가 진솔히 속삭여준 어느 이웃의 삶이었던 것 같디. 몇 년을 손꼽아 기다리다 개봉과 동시에 달려가 기대치 이상의 영화적 쾌감을 선사받았던 봉준호 감독과 쿠엔틴 타란티노의 어느 신작보다도, 겨울의 낯선 하루. 생각 없이 극장 앞을 지나다 몇 안 되는 관객들과 함께 우연히 마주하게 된 시간과 기억의 고민을 담고 있는 쿠바 발 엽서 한 장에 모든 기억과 그리움을 집중시키는 것을 보니, 확실히 다큐멘터리 장르에 마음이 쉬이 걸리는 것 같다.


지난 한 세기 낯선 땅에서 서로의 인생을 비춰가며 쿠바를 살아 낸 한인들의 인생과 사랑의 짤막한 기록들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시간’의 춤이란 제목을 설득력 있게 풀어내 주는 증거가 되지만, 송일곤 감독은 시간의 표면위에 포근한 나레이션을 흩뿌려 놓으며 기억의 대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어 준다. 모든 여행을 책임져준 이하나씨의 친절한 나레이션도 좋았지만, 불쑥 끼어들어 또 다른 차원의 기억 속으로 관객을 잡아끌며 다시금 시간의 춤이란 제목을 아련히 완성시켜 주는 장현성씨의 편지 낭독이야말로 가장 선명한 그리움 중 하나이다.


헤로니모 임이 보내는 첫 번째 러브레터. 상기나 향수 따위의 도구적 경험여부 정도는 큰 무리 없이 무의미하게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순간의 기적이다. 쿠바의 리듬처럼 뜨겁고 애잔한 작품 전반의 흐름 속에서도 유독 아련히 봉곳 솟아난 기억이다.


그나저나 <시간의 춤> 이라는 제목, 생각할수록 좋다. 송일곤 감독의 새로운 초대, <시간의 숲> 속으로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나섰던 것 역시 순전히 제목이 풍기는 기억에 대한 믿음때문이었다. 쿠바 여행을 통해 이러말을 남겼다 '시간이 죽지 않는 삶은 멋진 것이다. 만약 우리들이 사랑한다면 시간은 죽지 않는다.' 그리고  야쿠시마의 깊은 숲 속에선 '시간은 기억을 지우고, 기억은 시간을 만들어 낸다.' 고 했다. 앞으로 송감독의 시선은 어느 무대를 향하게 될까. 기회만 된다면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가 그랬던 것처럼 박용우와 타카기 리나의 치유적 여정이 몇 번만 더 반복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아니면 아예 일상에 천착하는 방식으로 우리 내 진정한 시간의 의미를 되짚어 보거나...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