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몇년간 봤던 영화들 중 가장 사랑스럽고 독특한 개성으로 똘똘뭉친 작품은, 느닷없이 영국에서 날아와 내 마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버린 리차드 아요아데 감독의 데뷔작 <서브마린> 이었다. 2010년에 공개된 이 후 선댄스를 비롯한 이곳 저곳의 소박한 영화제들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서서히 알리기 시작하던 시절부터 특별한 이유없이 자꾸 시선이 가는 영화였다. 손을 맞잡은 올리버와 조다나가 무심히 정면을 응시하던 한장의 사진. 그 이미지만으로 충분했다. 분명 좋아하게 되리라 직감했었다.
특별할 것 없는 15세 소년 올리버 테이트의 귀여운 심연으로 빠져들게 만들며 흡사 '올리버 테이트 되기'와도 같은 신비한 탑승감을 선사해줬던 <서브마린>은 독창적인 톤과 근례엔 찾아보기 힘든 사적인 진솔함으로 관객에게 다가서며 영국판 웨스 앤더슨 무비란 기분좋은 별칭도 획득한 작품이다. 영화의 전체 무게감과 맞먹을 만한 매력적인 '남과 여'의 캐릭터를 탄생시키며, 최소 향후 10년간은 <러브 미 이프 유 데어>와 <아멜리에>가 선점하고 있던 사랑스러운 커플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정의내려줄 만한 보물이기도 하다. 요즘까지도 툭하면 돌려보는 영화다. 샤워를 하고 외출 준비를 하는 동안 머리를 말리며 돌려보곤 한다. 자세를 잡고 진지하게 감상하지 않아도 <서브마린>의 공기와 세계관이 소박한 자전과 공전을 반복하며 옆에서 돌아가고 있단 느낌에 큰 위안을 받는다. 자꾸 털어 넣는다고해서 더 좋아질건 없는걸 알면서도 흡사 본능처럼 끊임없이 손이 가는 레모나 가루의 마력과도 같달까나.
이토록 소중한 작품을 연출한 재주꾼의 두번째 영화가 만들어지고 있다는데 어찌 이 소식을 알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영국 시트콤 <아이티 크라우드>의 모스로 얼굴을 알린 그는 아직까진 연출보단 연기자의 비중이 더 크다. 올해 벤 스틸러와 빈스 본 등의 코미디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 <The watch>에 출연했지만 작품 자체가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면서 배우로서 헐리웃 상업영화에 안착하는 일엔 헛발을 딛은 것 같다. 대신 2013년에 공개될 그의 두번째 영화 <The double>은 영국에 적을 둔 작품이긴해도 '제시 아이젠버그'와 '미아 와시코우스카' 등을 주연 캐릭터로 캐스팅하며 리차드 아요아데 월드의 세계적 확장을 기대하게 만든다.
Joe Dunthorne 의 동명소설 <서브마린>을 각색해 데뷔전을 치른 그는 이번에도 소설책을 기반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다. 그 작가는 바로 도스토예프스키 ! 리차드는 러시아 대문호의 초기작(1846년에 만들어진 2번째 소설)을 기반으로 정신분열과 도플갱어에 관한 어두운 코디미 영화를 만들고 있다. 지금까지 공개된 것이라곤 원작의 존재, 런던에서 진행된 촬영, 간단한 컨셉, 몇줄의 인터뷰 그리곤 따끈한 두장의 사진이 전부다. <서브마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리차드가 직접 각색한 시나리오로 촬영됐다고 한다. 이번에 공동 각색에 참여한 이는 하모니 코린의 형제인 아비 코린. 아직까지 IMDB에 공개된 시놉시스는 달랑 한줄이 전부다.
A comedy centered on a man who is driven insane by the appearance of his doppleganger.
아직 영화의 정식 시놉을 접하진 못했으니 원작의 스토리를 통해 작품의 분위기를 예상하는 수 밖에 없겠다. 1846년에 완성된 도스토예프스키의 <분신>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골랴드킨은 승진을 꿈꾸는 평범한 관리이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 인지 그의 미래는 암담해 보인다. 절망에 빠진 골랴드킨은 그것이 어떤 음모와 관련된 것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게 된다. 자신에게 극도의 모멸감을 불러 일으킨 사건 이후 그는 거리에서 또 다른 골랴드킨과 마주친다. 그들은 처음에는 서로 종속관계를 유지하지만, 이 관계는 점차 경쟁자로, 적으로 발전한다. 제2의 골랴드킨은 원조 골랴드킨이 근무하는 동일 관청에서 직책을 얻게 되고, 원조가 실패한 승진의 기회에 더 가까이 다가간 것처럼 보인다.
정신분열 내지 도플갱어로 압축되는 스토리의 외형에 제시 아이젠버그와 리차드 아요아데의 인터뷰를 더해 보자. 지난 5월에 시작된 촬영은 진작 완료되었고 현재는 어느정도 작품의 편집까진 완성되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영화 속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대부분의 배경을 세트로 만들어 도시 전체를 완성했다고 한다. 거기다 도플갱어란 컨셉에 맞게 기본적인 특수효과도 가미되니 확실히 이번 영화에선 자본의 덩치가 불어난듯 싶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장르에 대한 이야기인데 코미디와 호러가 반복적으로 동시에 언급되고 있다. 아이러닉한 컨셉에 맞춘 블랙 코미디의 구조에 디스토피아적 분위기로 가득한 공포영화의 어두운 톤이 배경이 깔린다고 한다. 인터뷰를 읽다보니 원작의 1846년을 현대적으로 각색함에 있어 그 배경을 평범한 현대 런던이 아닌 독특하고 침울한 별도의 공간으로 상정해 이야기를 꾸며나갈 것 처럼 보인다.
위의 이미지는 몇일전에 처음으로 공개된 <The double>의 스틸샷이다. 미아 와시코우스카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아마도 무기력한 본체를 연기하고 있는 듯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캐릭터는 슬쩍 훔쳐볼 수 있다. 반가운 것은 두번째 사진에서 제시 옆에 서있는 배우 노아 테일러. 그러니깐 그는 <서브마린>에서 주인공 올리버 테이트의 심약한 아버지를 연기했던 배우이다. 감독의 인터뷰에 따르면 데뷔작에 출연했던 배우들의 상당수가 이번 신작에도 참여한다고 한다. 매력적인 그녀 야스민 페이지 (조다나)도 함께 한다. 단지 익숙한 배우의 출연이 반가운게 아니다. 독창적인 데뷔전을 치른 감독들이 헐리웃으로 넘어가 메가폰을 잡곤 엉뚱한 결과물을 내놓았던, 그 괴상한 코스로 빠지지 않을 것이란 사실이 즐거운거다. 자국 시장에서 규모만 조금 키워 자신의 색을 그대로 유지해갈 수 있단게 얼마나 기쁜일인지, <타인의 삶>을 만든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의 이상한 헐리웃 데뷔작 <투어리스트>를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지 않았었나.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더라도 유지가능한 색과 신선한 가능성만 보여줄 수 있다면 괜찮은거다. 모든 단서를 긁어모은 후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겹쳐질만한 영화들이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에드가 라이트의 <스콧 필그림 vs 더 월드>를 기다리던 설렘과 비슷한 느낌이다. 어떤 변화가 있을까. 그리고 이 영화는 과연 한국의 스크린에 걸릴 수 있을까. <서브마린>은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결국 DVD를 살 수 없었다. 그의 두번째 영화를 기다리며 <서브마린>의 트레일러를 한번더 플레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