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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05.15 Cinema Link. 3] 영화에 등장하는 총기명이 궁금할때
- 2013.05.15 당신이 보지 못했을 100편의 좋은 영화들 4
- 2013.05.15 이안 - Never Ending Dream
- 2013.05.15 Cinema Link. 2] 무비 타이틀 스틸 콜렉션
- 2012.12.31 일요일의 리얼리즘
- 2012.12.25 달세계 여행 (Le Voyage dans la lune) - 멜리에스 + Air 5
- 2012.12.14 독재자 (2012)
- 2012.11.27 히치콕의 탄생과 영화의 죽음 - 김성욱 1
총기의 존재 자체가 낯설게 느껴지는 우리에겐 영화 속 무기들에 대한 관심은 그다지 큰 편이 아닌것 같다. 그래도 종종 영화를 보다보면 무기의 매력에 푹 빠지게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한다. 갱스터 느와르물 내지 웨스턴 장르를 반복해서 접하다 보면 자연스레 피어나는 관심이기도 하다. IMFDB는 영화 속 총기의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웹페이지다. 영화 제목 - 매체 - 배우 등 다양한 카테고리로 분류해 작품 속 총기의 모델명을 상세하게 밝혀준다. 스틸 이미지를 친절히 올려주는 곳이니 궁금증 해소에 큰 도움이 될것으로 보인다.
'좋은' 영화들일지도, 아직 당신이 '보지 못했을'지도 확신하긴 어렵지만 나름 유익한 자료라 생각하여 올려본다. 리차드 크라우즈의 저서 <The movies you've never seen>은 간략한 소개와 함께 숨겨진 작품들을 공유해보고자 쓰여진 책이다. 제목 마저 낯선 몇편의 원석부터 이곳 저곳서 얼핏 제목만 스쳐들은 컬트작까지, 상대적으로 유명세가 덜한 작품들이 잔뜩 들어차있다.
브루스 캠벨의 호연이 돋보이는 엉뚱한 상상력 <부바 호-텝>, 영국 어법으로 체험하는 폴 베타니-말콤 맥도웰 콤비의 정신나간 갱스터물 <갱스터 넘버 원>, 공포의 의미를 고민해본 피터 보그다노비치의 창의적인 데뷔작 <타겟> 등 지금까지 이 책에서 신세진 영화들은 저마다의 미덕을 갖춘 썩 괜찮은 작품들이었다.
listal.com 의 어느 유저가 책 속의 영화들은 리스트 형식으로 정리한 페이지가 있어 올려본다. 100 movies 그리고 이 곳에가면 pdf 영문 파일의 다운이 가능하다. 제목들을 살펴보다 스틸 이미지에 흥미가 생기거나 좋아하는 배우의 모습이 보인다면 직접 본문의 글을 참고한 후 감상여부를 결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것 같다.
In 1978, as I applied to study film at the University of Illinois, my
father vehemently objected. He quoted me a statistic: ‘Every year,
50,000 performers compete for 200 available roles on Broadway.’ Against
his advice, I boarded a flight to the U.S. This strained our
relationship. In the two decades following, we exchanged less than a
hundred phrases in conversation.
Some years later, when I
graduated film school, I came to comprehend my father’s concern. It was
nearly unheard of for a Chinese newcomer to make it in the American film
industry. Beginning in 1983, I struggled through six years of
agonizing, hopeless uncertainty. Much of the time, I was helping film
crews with their equipment or working as editor’s assistant, among other
miscellaneous duties. My most painful experience involved shopping a
screenplay at more than thirty different production companies, and being
met with harsh rejection each time.
That year, I turned 30.
There’s an old Chinese saying: ‘At 30, one stands firm.’ Yet, I couldn’t
even support myself. What could I do? Keep waiting, or give up my
movie-making dream? My wife gave me invaluable support.
My wife
was my college classmate. She was a biology major, and after graduation,
went to work for a small pharmaceutical research lab. Her income was
terribly modest. At the time, we already had our elder son, Haan, to
raise. To appease my own feelings of guilt, I took on all housework –
cooking, cleaning, taking care of our son – in addition to reading,
reviewing films and writing s. Every evening after preparing dinner, I
would sit on the front steps with Haan, telling him stories as we waited
for his mother – the heroic huntress – to come home with our sustenance
(income).
This kind of life felt rather undignified for a man.
At one point, my in-laws gave their daughter (my wife) a sum of money,
intended as start-up capital for me to open a Chinese restaurant –
hoping that a business would help support my family. But my wife refused
the money. When I found out about this exchange, I stayed up several
nights and finally decided: This dream of mine is not meant to be. I
must face reality.
Afterward (and with a heavy heart), I enrolled
in a computer course at a nearby community college. At a time when
employment trumped all other considerations, it seemed that only a
knowledge of computers could quickly make me employable. For the days
that followed, I descended into malaise. My wife, noticing my unusual
demeanor, discovered a schedule of classes tucked in my bag. She made no
comment that night.
The next morning, right before she got in
her car to head off to work, my wife turned back and – standing there
on our front steps – said, ‘Ang, don’t forget your dream.’
And
that dream of mine – drowned by demands of reality – came back to life.
As my wife drove off, I took the class schedule out of my bag and slowly,
deliberately tore it to pieces. And tossed it in the trash.
Sometime
after, I obtained funding for my screenplay, and began to shoot my own
films. And after that, a few of my films started to win international
awards. Recalling earlier times, my wife confessed, ‘I’ve always
believed that you only need one gift. Your gift is making films. There
are so many people studying computers already, they don’t need an Ang
Lee to do that. If you want that golden statue, you have to commit to
the dream.’
And today, I’ve finally won that golden statue. I
think my own perseverance and my wife’s immeasurable sacrifice have
finally met their reward. And I am now more assured than ever before: I
must continue making films.
You see, I have this never-ending dream.
어떠한 경험을 한 후에 그에 관한 생각을 정리하고 확장하기 위해 글을 쓰진 않는다. 오히려 이쁘고 오밀조밀하게 엉겨있는 문장이나 반짝이는 어휘적 표현이 적히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서 종종 글을 적을 뿐이다. 경계가 없는 모호한 현상과 상황, 숱한 감정들을 최대한 포용할 수 있는 아슬한 표현력이 부럽다. 그런 과정을 고민하는 순간이 즐겁다. 몇년이 지나도 떠나지 않는 표현 하나가 있어 생각난 김에 적어두고 싶었다. 물론 나의 생각은 아니다. 영화 평론가 정성일씨가 쓴 리뷰 중에서 언급된 배용균 감독의 표현이다. '일요일의 리얼리즘'. 흥미롭게만 느껴졌던 이 표현이 자꾸만 떠오른다. 생각보다 적용 가능한 순간들이 많았다. 아, 참 이쁘다. 이런 표현은. 선을 긋는 동시 많은 것들을 포용하는 발상이다. 일요일의 리얼리즘. 기억해두자.
배용균은 (필자와의 매우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자신의 영화세계를 '일요일의 리얼리즘'이라고 이름지었다. 모두가 평일의 리얼리즘을 다룬다면, 자신은 모든 규칙이 하루쯤 쉬는 세상의 일상생활을 다루고 싶다고 덧붙였다. 이것은 자신의 영화 속에서 다루는 자연의 풍경에 그 어떤 다른 변형도 가하지 않으려는 태도와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아무추어 연기자들의 표정 속에서 생활을 끌어내려는 마음에서 그의 영화가 시작한다는 점에서 정말 그러하다. 그래서 배용균의 영화는 풍경과 표정 사이의 자기 성찰로 이루어져 있다.
95 년쯔음해서 쓰여졌을 정성일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리뷰 중에서
세계 최초의 SF 영화인 동시 독창적인 영화기법과 신선한 내러티브의 제공으로 인해 현재까지도 필견목록에서 절대 빠지지 않는 조르주 멜리에스 감독의 1902년작 <달세계 여행>. 아마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이라도 찡그린 표정의 달을 가득 채워 정지시킨 한장의 스틸컷 정도는 익숙할 것이다. 영화 감독인 동시 마술사이기도 했던 그는, 이미지의 활동 속에서 창조할 수 있는 다양한 형태의 영상적 실험에 호기심을 느낀 사람이다. 도구적이고 물리적인 외형적 실험에 독창적인 상상력을 얹어 1902년, 그의 수많은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꼽히는 이 영화 <달세계 여행>을 완성시키게 된다. 당시 멜리에스는 자신의 영화를 판매할때 흑백버전과 컬러버전(Hand - Colored versions)을 동시에 제공했다고 한다. 영화가 세상에 공개된 후 수십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달세계 여행>의 컬러버전은 그 자취를 감췄다가, 1993년에 와서야 새롭게 발견됐다고 한다. 하지만 필름의 상태는 심각하게 훼손이 되어 복원작업이 불가피했고, 그렇게 시작된 <달세계 여행> 컬러버전(Hand - Colored versions)의 복원은 프레임 바이 프레임 방식으로 1999년에 시작되어 2010년에 와서야 완성되었다고 한다. 발견 후 18년, 영화가 만들어진지 109년만인 2011년, 깐느영화제에서 복원버전은 상영되었고 프랑스의 일렉트로 그룹인 'Air'가 영화에 맞는 새로운 사운드트랙을 제작했다. 아래 영상은 우여곡절끝에 우리에게 돌아온 오래된 신품이다. 110년전의 영화, 인류의 영화적 호기심을 현 단계로 끌어올릴 수 있었던건 멜리에스와 같은 도전적인 몽상가들의 호기심 덕분일 것이다. 아직 <달세계 여행>을 보지 못했다면, 잠깐 짬을내어 14분간의 아름다운 여행을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사샤 바론 코헨-래리 찰스 콤비의 환상적인 조화를 열렬히 지지하는 입장에서, <독재자>들은 그저 시시한 상심에 지나지 않았다. 믿기 어려울 정도의 평이한 발상과 유치한 연출방식에 다소 의아함이 들긴 했지만 그렇다고해서 호의를 철회할만한 태만이 느껴진건 아니니 그들의 창작활동에 희극의 미래를 걸고픈 믿음엔 변함이 없다. 고작 세 편째다. 어차피 한번쯤 겪어야 했던 정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앞선 두편의 걸출한 코미디의 컨텐츠 속에는, 단발성 아이디어와 작가적 창의성에 의존한 시스템적 코미디물이 따라갈 수없는 예외성이 존재했었다. <보랏>과 <브루노>의 기막힌 감각들을 이벤트라 별칭하며, 다시금 시작하는 마음으로 그들에게 새로운 미래를 묻고싶을 뿐이다. 다른 매체에서 탄생시킨 캐릭터성을 차용해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한 작품들, 그들과 단순 비교를 하기엔 <독재자>의 부담감이 애처롭다. <보랏>과 <브루노>를 통해서 이전엔 미처 발견해지 못했던 희극적 감각을 자극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그들, 존재감을 알리는 데에 완벽한 성공을 거둬냈지만 그 과정에서 소진된 형식과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대체해낼지, 지금 부터가 진짜 이야기의 시작이다. 현재 상업영화에 불고 있는 경계적 연출방식의 희극적 답안을 어떤 방식으로 연장할 수 있을지 너무도 궁금하다. 이들의 사랑스런 난장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 현재 지구상에서 스크린 밖에서도 자신의 캐릭터성을 연장시킬 수 있는 배우는 그가 유일하다. 배우 그 자체만으로 작품 전체를 상징할 수 있는 희극인은 사샤 바론 코헨 뿐이다. 우연한 타이밍에 기생하는 반짝거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장르와 방식, 모든것의 중점에서 웃음의 미래를 꿈꾸게 해준다. 10년 텀의 장르적 싸이클을 한두번쯤 씹어먹을 만한 상징적인 물건이라 믿고싶다. 영화 시장에서 코미디는 점점 죽어가고 있다. TV 의 상상력에 침몰되며 점점 단순화되고 있다. 난 사샤 바론 코헨에게 짜릿한 역전극을 부탁하고 싶다.
1999년에 발간됐던 <필름 컬쳐> vol.2 no.3 속 김성욱씨의 칼럼 <히치콕의 탄생과 영화의 죽음>
시각성과 순수영화
히치콕은 어떻게 자신을 순전히 시각적 수단을 통해 표현할 것인가라는 문제를 통해 자신의 영화를 고려한다. 그의 영화에서 형식은 단지 내용을 치장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용을 창조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감독의 능력은 대상을 사진적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시각적 영상으로서 표현하는 것이다. 인물의 심리 묘사 또한 배우의 표정 연기보다는 카메라의 시각성을 통해 드러난다. <사보타주>에서 여자 주인공의 심리 묘사는 대사나 표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단지 그녀의 손, 눈, 다시 칼을 든 손, 그리고 나서 눈을 비추는 카메라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창>에서 보여지는 것은 밖을 관찰하는 움직일 수 없는 사진 작가, 그 사람이 보는 대상, 그리고 그의 반응이다. 히치콕이 꿈꾸는 것은 순수한 시각적 표현을 통해서만 영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트뤼포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은 의혹, 질투, 욕망 그리고 부러움 등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즉 설명적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시각적 이미지로 표현하는 데 있어서 거의 독보적인 감독이었다.
그가 일종의 순수 영화에 몰두했던 것은 1920년대 몇 년 간 독일 베를린의 우파 UFA 스튜디오에서 일했던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거기에서 히치콕은 독일 표현주의 영화, 특히 무르나우 영화에서의 신들린 듯한 카메라 운동에 매혹됐다. 로메르와 샤브롤이 지적하듯이 <살인>의 첫 장면에서 보여지는 긴 측면 트래블링 숏과 프레임, 조명, 무대 장식 들을 본질적인 몇 개의 선으로 처리하는 순수한 미장센은 독일 표현주의, 특히 무르나우의 영화를 연상케 한다. 그는 많은 무성 영화 감독들과 마찬가지로 사운드의 도래와 더불어 무성 영화가 갖고 있던 자유로운 카메라 운동과 시각적 표현의 가능성이 종말을 고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 했다.
이러한 카메라의 운동은 배우와 종종 갈등을 유발한다. 히치콕에게 있어서 인물은 행동하고 지각하고 경험할 수 있지만 그들을 한계짓고 결정짓는 관계를 드러낼 수는 없다. 인물들 간의 관계는 순수하게 카메라 운동을 통해서 보여진다. 그것은 대사에 의존하지 않고 특별한 극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기술이며, 끝내는 우리 자신의 감성의 리듬에 따라 우리를 하나의 감정에서 또 다른 감정으로 이끌어 가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새>에서 새들의 습격 이후 보안관이 찾아와 미치와 대화하는 장면은 사건에 대한 정황을 기술하는 것이 아니라, 멜라니의 주관적인 시점 숏과 멜라니를 따라가는 카메라를 통해 어머니의 불안과 근심을 묘사하는 것으로 표현된다.
이러한 카메라의 사용은 프레임을 마치 일종의 격자판처럼 엄격한 틀로 만들고 또 한편으로는 서스펜스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만들어 낸다. 히치콕에게 있어 프레임은 모든 구성 요소들을 제한하는 태피스트리처럼 작동한다. 이러한 엄격하고 제한적인 프레임의 사용은 종종 바쟁과 같은 리얼리즘적인 영화 비평가들에 의해 비판받는다. 하지만 히치콕의 혁신은 프레임의 엄격함을 통해 정신적인 관계들을 드러내는 데 있다. 히치콕의 서스펜스는 그가 영향을 받은 1920년대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기법에 기인한다. 그 당시 독일 표현주의자들의 기법은 그 뿌리를 멜로드라마와 디킨스의 소설에 대고 있었다. 예를 들어 <맨섬의 사나이> (1929) 와 같은 초기 무성 멜로드라마에서 보여지는 히치콕적인 서스펜스의 원형은 그리피스가 <국가의 탄생>에서 창안한 교차 편집을 통한 서스펜스의 구축과 유사하다. 그리피스는 이러한 기법을 디킨스의 소설에서 배웠다고 인정했다.
히치콕은 영화의 이야기 소재를 극적으로 구성하는 것 또는 극적인 상황을 가능한 한 강렬하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세팅을 만들어 낸다. 사건은 <맨섬의 사나이>와 <새>에서처럼 인간을 고립시키는 섬에서 혹은 <로프>에서처럼 시공간적으로 통일된 하나의 무대 공간에서 발생하거나, 심지어 <라이프 보트>에서처럼 바다 위에 떠 있는 구명 보트 위에서 일어난다. 이렇게 인간을 고립시키는 공간과 환경은 표현주의적인 무성 영화에서 인간의 정신을 표현하는 '영혼으로 물들어진 풍경 Landschaft mit seele' 과 유사하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표현주의적인 필치의 공간은 많은 부분 그의 영화를 건축적인 공간으로, 예를 들어 <현기증>의 경우 영화 초반부는 샌프란시스코의 도시 건축물에 대한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지고, 사건이 일어나는 배경은 수세기가 지난 집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로 카메라는 훑어 가고 또한 정지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등장하는 18세기 스페인풍의 오래 된 수도원 건축물과 종탑은 주인공 스코티의 강박증, 즉 현기증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서스펜스, 시네마 - 그라피, 그리고 기억
그러나 히치콕의 영화가 자의적이고 정당화되지 않는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으면서도 설득력을 갖게 되는 것은 그가 영화적 논리로서 제시하는 서스펜스의 규칙 때문이다. 만일 히치콕의 엄격한 프레임과 카메라 운동, 그리고 정신적인 세팅이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라면, 구성적인 측면에서 서스펜스는 이러한 감정을 지속하고 지연시키면서 관객을 영화 속으로 참여하게 만든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무고한 사람이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를 뒤집어쓴다는 테마는 사건과 화면의 이중성을 통해 '둘'을 중심으로 조직적으로 짜여져 있다. <의혹의 그림자> 에서 두 주인공, 즉 살인자와 조카는 찰리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있으며 이 둘의 만남은 무죄와 유죄 사이에 그어져 있는 선을 지워 버린다. <의혹은 전망차> 에서 브루노와 가이는 서로 다른 인물이지만 이혼을 거부하는 가이의 부인을 브루노가 살해했을 대, 그들은 둘로 분열된 한 인물이며 그만큼 가이의 무죄와 유죄 사이의 경계는 희미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로메르가 지적하듯이 히치콕적인 테마는 단지 무고한 자가 범죄를 뒤집어쓰는 것이 아니라 서로 범죄를 교환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교환을 통해 죄가 없다고 보여지는 한 인물이 범죄자와의 접촉으로 해서 그의 범죄에 참여하게 된다. <나는 고백한다> 에서 무고한 신부는 범죄자인 집사로부터 고백을 통해 범죄를 선물받게 된다. <현기증>에서 스코티는 단지 매들린에 불쌍하게 현혹된 것만이 아니라 '거짓된 죄지음,' 다른 한편으로 거짓된 무고함으로 인해 범죄자가 된다. 매들린의 죽음에 대해 그가 책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명민함과 현기증으로부터의 회복은 주디를 죽음으로 몰고 간다. 그는 결국 더 이상 무고한 가자 아니다.
히치콕의 영화에서 보여지는 관계들의 체계는 영화를 단지 감독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독, 영화, 관객들의 세 항의 함수로서 나타나게 한다. 그의 영화 전체는 오직 추론을 보여 주는 것이며, 우리는 인물들을 따라가면서 사건들에 대한 지각과 기억을 통해 행동 및 그것을 행한 사람들을 붙잡고 있는 관계들을 해석한다. <현기증> 이 순수한 서스펜스의 영화가 되는 것은 이 영화가 액션을 위한 동기를 더 이상 열정들 혹은 비극적인 도덕에서 찾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인물은 더 이상 사건에 대한 행동적인 동기 부여를 하고 있지 않다. 스코티가 매들린의 차를 쫓아가는 구부러진 길들처럼 우리는 과거의 사건들과 현재의 관계들을 재해석하고 추론할 뿐이다. 히치콕의 영화는 행동, 지각, 감정에 대립해서 관계-이미지 혹은 정신적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이다. 대중은 영화 속으로 들어와야만 하고 도 한편으로 그들의 반응이 영화의 통합적인 부분을 구성한다. 따라서 서스펜스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이러한 3항 관계에서 비롯된다.
히치콕은 <사이코>를 자랑스럽게 여겼는데, 관객이 순수 영화에 의해 자극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 증류된 순수 영화는 다른 한편으로 스타일적인 엄밀함 혹은 작가적 서명과도 같은 기하학적이고 동적인 형식을 얻게 된다. 그런 점에서 히치콕의 영화는 에이젠슈테인의 영화와 더불어 선적인 본성을 갖는 시네마-그라피가 된다. 이러한 선적인 본성은 <사이코>의 꺾어진 선들과 흑백 대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의 화살표와도 같은 좌표들,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으로 현상화된다. 로메르는 히치콕의 <현기증>을 <의혹은 전망차>에서 보여지는 직선과 원의 강박적인 현시와 비교하며 크레딧 시퀀스에서 보여지는 나선의 형상을 설명한다. <현기증>에서 직선과 원은 세 번째 차원, 즉 심도의 매개에 의해 결합한다. 이러한 나선형은 스코티가 차 안에서 그려 보는 회로, 매들린의 목덜미에서 보여지는 머리 다발의 나선형, 그리고 스코티의 욕망을 자극하고 그를 종탑으로 이끄는 계단의 현기증적인 나선형으로 나타난다. 로메르는 이러한 나선형적인 소용돌이가 공간 안에서 여행하기보다는 일종의 시간 안에서의 여행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스코티는 단지 과거로의 탐사에 나서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과거로의 나선형적인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이다. 모든 것은 원을 만들지만 그 고리는 결코 닫히지 않고 우리를 계속 회상으로 깊게 이끈다. 따라서 <현기증>의 건축학적인 공간들을 따라가는 카메라의 즉각적이고 실용적인 근거는 시간에서의 방향 잃기의 인상을 창조하기 위한 것이다. 스코티의 능력 마비 상태(현기증)는 공간적인 장에서가 아니라, 시간적인 장에서 발생한다. 그를 둘러싼 환경은 시간에 의해 구성되어 있고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미래로 향해 있는 예감이라기 보다는 과거로 향해 있는 회상 (기억 혹은 추억)과 관련된다. 따라서 <현기증>에서 보여지는 나선형의 나이테는 일종의 이미지-크리스탈을 보여 주는 것이다.
히치콕의 죽음, 고다르 그리고 이미지의 죽음
고다르는 히치콕의 이러한 특성을 영화의 힘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히틀러 혹은 나폴레옹 이상으로 실제로 세계의 지도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던 대중에 대한 통제력을 영화를 통해 갖고 있었다. 히치콕은 대중을 위해 이미지와 이미지들의 연쇄를 통해 영화가 여전히 예외적인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재발견하게 했다. 히치콕은, 고다르의 표현을 빌리면, <오명>에서 보여 주듯이 단지 열지어선 보르도 포도주병을 보여줌으로써 대중들을 떨게 만드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는 곧 순수한 영화의 힘과 동일시된다.
우리는 <오명>의 이야기가 무엇이었는지, 자넷 리가 베이츠 모텔로 왜 가는지를 기억하지 못한다. 당신은 한 쌍의 스펙터클들 혹은 풍차를 기억할 것이다 -- 수백만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들. 만일 당신이 <오명>을 기억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 아마 포도주병들. 당신은 잉그리드 버그먼을 기억 못할 것이다. [반면] 당신이 그리피스 혹은 웰스, 혹은 에이젠슈테인 혹은 나(고다르)를 기억할 때, 평범한 대상들을 기억하지는 못한다. 그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히치콕을 통한 영화적 힘의 위력은 또한 그의 죽음을 영화사적인 사건으로 만들어 낸다. 1980년 4월 히치콕이 죽었을 때, 고다르는 <네 멋대로 뛰어라 Sauve qui peut (la vie)> (1979)를 갖고 칸을 방문했었다. 이 영화는 고다르에게 있어서 오랫동안의 공백을 깨고 다시 극영화로 돌아오는 것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그는 히치콕의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히치콕의 죽음은 하나의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의 이전을 표지한다. 내 생각에 우리는 시각성에 대한 의심 혹은 더 정확하게 말해서 시각성의 쇠퇴로 정의되는 시대로 들어가고 있다고 믿는다. 우리의 시대는 시각성을 억압한다. 내가 느끼기에 지금은 내가 첫번재 영화를 만들 때처럼 여겨진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영화를 만들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히치콕은 무성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시작된 영상의 힘을 다시 한 번 회복하고 재발견한 사람이었다. 그는 또한 영화를 카프라, 에이젠슈타인과 더불어 대중적인 예술로 만들려고 했던 사람이다. 히치콕처럼 탄생만큼이나 죽음이 영화의 역사와 더불어 상징성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마 드물 것이다. 영화의 탄생과 더불어 히치콕의 탄생 100주년을 맞이한 올해 기억해야 하는 것은 차라리 젊은 나이에 죽어 간 무성 영화와 1980년의 히치콕의 죽음이다. 고다르의 말처럼 영화가 만일 인간의 생명과 유사한 나이를 갖고 있다면, 영화는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있으며, 따라서 우리는 영화를 만들려는 욕망을 재발견하고 영화의 역사를 기억하는 작업을, 이제 늦었지만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