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장 흔히 듣는 질문 '요즘 괜찮은 영화 뭐있어?' 그러나 얼마전 이 질문을 받아든 순간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새삼 자각했단듯이 머릿속으로 자답할 뿐이었다. 확실히 요즘엔 영화를 안보는구나. 이유없이 빠져든 대상이었기에 시들해진 지금에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다. 대리만족이나 도피보단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스케치를 고민하는 시기이기 때문일까. 어쩌면 영화를 감상하는 일은 현실적인 상념의 과정속에 부자연스런 환상을 뿌리리라 근심하기 때문일까. 아예 안보진 않아도 확실히 이전보단 빈도가 준것만은 사실이며 자연스레 이곳에서 할 이야기거리도 부족해졌다. 그러던 중 우연히 마주해 충동적으로 행한일이 있었다. 5년전 광화문의 어느 극장에서 나를 치유했줬던 영화를 스크린으로 다시금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것이었다. <카모메 식당>은 영화를 대함에 있어 전환의 기점이 아닌 유보의 독려로서 잠시 모든것을 내려놓고 부담을 덜어내라는듯 나의 어깨를 토닥여줬다.
사실 영화를 공유하는 방식과 능력에 있어 많은 회의를 느끼는 요즘이다. 하늘에 맹세코 나는 영화를 너무나 사랑한다. 이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내가 소개하는 방식과 핵심들을 보고있자면 수사를 위한 문장쌓기, 투명하고 직관적인 감상에 대한 흔해빠진 서술의 반복뿐이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웹상에서 범람하고 있는 의미없는 소문장들의 전시만을 위한 전시를 눈살찌푸리며 바라보면서도 정작 가이드로서의 고민보단 형식만을 메우기 위해 핵심과 진심을 챙기지못한 내 자신의 이중적인 태도에 많은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많은 생각을 하는 요즘이다. 주변의 사람들에 대하여, 앞날에 펼쳐질 일상들에 대하여, 불안까진 아니여도 호기심어린 고양이 눈으로 생각들을 응시하는 중이다. 그리고 이런 고민과 문제들이 해결된 후에야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취미인으로서의 봉사,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영화전문 블로거가 될 수 있을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역시 당장에는 힘든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장 이곳의 문을 닫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이전보다는 고른 호흡으로 허술한 생각보단 명확한 자료와 의미있는 진술에 초점을 맞춰보고 싶다는 이야기이다. '진심' 말이다. 강박과 허식을 덜어낸 진심어린 나만의 공간. 생각과 경험을 정성스레 쌓고싶다.
슬슬 마무리다. <카모메 식당>을 감상한 후 여유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블로그의 완결성을 위해 미처 신경쓰지 못한 나의 또다른 취미생활에 대해 미안함을 느끼게 되었다. 영화 뿐 아니라 나는 많은 것들을 보고 듣는걸 좋아한다. 오히려 짧은 템포속에 기발한 사고들이 가득 들어찬 영상과 멜로디 속에서 영화 이상의 활력과 영감을 얻는 편이다. 그래서 내 맘 한켠 어딘가의 목 좋은 자리를 찾아 소박하게나마 나만의 <카모메 식당>을 오픈했다. 거창할 것 없이 그냥 이곳 블로그를 임시적으로 보수확장 하고자 한다. 현실적 여유가 완성되기 전까진 포스팅의 완결성에 집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 게시물들은 단지 제목과 대상만 존재하게 될 것이다. 무더운 여름날 우연하게 발견한 어느 소담한 나무의 시원한 그늘처럼 종종 시간과 여유가 된다면 슬쩍 기대어 일상의 바쁜 생각들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만남이 되었으면 한다. 당초 끌고오던 진심에 대한 고민에 <카모메 식당>에서 배운 여유의 덕목을 살포시 올려본다. 그렇게 불안과 취향을 달래본다,
그래도 이 모든 생각들을 한편의 영화를 통해 결론지을 수 있었으니 영화는 내게 있어 참으로 소중한 존재다. 이야기하는 방식의 절실함을 알려준 <그을린 사랑>. <차가운 열대어>를 통해 영혼강탈자의 영화적 매혹을 일러준 소노 시온 감독. 떠나가고 남은 것들의 소중한 눈물들 <굿바이 그레이스>와 <사랑 후에 남겨진 것들>. 실현가능한 범위내에서 가장 역동적인 살냄새를 풍겨주며 내 맘속에 들어온 돈 루스 감독의 <해피 엔딩>. 최근에 내 마음을 움직인 몇편의 영화들을 기억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아래의 영상은 본문을 관통하는 정서의 핵심이다. 영화의 엔딩을 함부로 올려선 안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있지만 많은 것들을 일러준 순간으로서 이 글과 맥을 함께하는 씬이기에 붙여봤다. 감상여부는 스스로 판단해서. 그런데 정말이지 훌륭한 마무리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