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sten'에 해당되는 글 214건
- 2014.04.09 Seu Jorge - Starman
- 2014.04.09 Tom Misch - Dusty Memories
- 2014.01.14 근황의 소리 part. 1 8
- 2014.01.03 스트로매 Stromae - Formidable 1
- 2013.12.29 Yann Tiersen - Fuck Me
- 2013.12.12 Mr. Hudson - Fred Astaire 6
- 2013.12.12 토쿠마루 슈고 Shugo Tokumaru - Live on KEXP
- 2013.12.12 PlayList .6 & 7 - Dear My Friends
- 2013.12.11 PlayList .5 - 10.28 2
- 2013.12.11 PlayList .2 & 3 & 4 3
Fromm - Arrival
merry go round
좋아해
도착
Electric Wire Hustle - Waters
Waters
Tom Boy
Gimme That Kinda
The Solutions - The Solutions
Silence
(I couldn't be) Your One
Talk, dance, party for love
Gonzales - White Gloves Concert (Live)
Game for fools
When i was a young girl
Multiply
선우정아 - It`s Okay, Dear
알수 없는 작곡가
뱁새
Purple Daddy
Dirty Beaches - Badlands
Lord Knows Best
True Blue
A Hundred Highways
Yo la tengo - and then nothing turned itself inside out
From Black to Blue
Saturday
The Crying of Lot G
Agnes Obel - Aventine
The Curse
Run Cried The Crawling
Aventine
바라고 바라던 아티스트의 모습이다. 벨기에 출신의 뮤지션 스트로매 Stromae 는 뮤지션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잘 다져진 음악적 토대 위에 다양한 형태의 시대적 감각을 껴입고 있다. 많은 통로는 아니었지만 그간 접할 수 있었던 모습만으로 섣부른 확신을 해보자면, 자신의 모든 성과들을 유연한 모습으로 오가며 가장 세련된 형태의 음악 놀이를 즐기는 사람이 아닐까 싶다. 단순히 트랙의 완성도 만으론 시대적 갈증을 충족시키긴 어려운 시대에 와버렸다. 모두가 동참할 필요는 없지만 새로운 시대의 기점이 되기 위해선 뮤지션들 역시 영상언어를 몸에 익혀야만하는 시대이다. 처음 맞는 시대적 요구는 아니다. 하지만 MTV 세대의 기회적 공산품과는 다른 형태란걸 알아야 한다. 일상에서 조차 상호간의 감시와 노출이 상식이 되버린 현 시대에서, 사람들은 개인의 이야기와 진실이라 믿고픈, 본질을 원한다. 이것은 모든 방면의 쇼비즈니스-소비문화가 쫒고 있는 진리의 방향성이기도 하다. 기획 상품의 일부인 노랫말과 춤사위는 결코 새로운 형태의 갈증을 충족시킬 수 없다. 그러한 대상을 향한 팬덤의 신기루는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망각의 늪에 빠져버릴 것이다. 음악은 개인이라는 주체, 그 자체가 정수로서 작동하는 예술이라 믿고 싶다. 그러하기에 참 슬픈 오늘이다. 물론 모든것을 공급-창작자의 책임으로 돌리는 것은 무책임한 회피다. 어찌어찌 흘러와버린 기형적인 음악산업 구조는 많은 젊은 창작자의 자기결정권을 박탈시켰으며, 가상공간에서 마저 무한한 가능성을 스스로 억압하는 윤리를 빗댄 익명의 증오는 대중의 시선이란 권위로 예술적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I know you know we're all falling into a neverending mess
So we have to take care, take care, and share it, share it, share it together (x2)
So let's get undressed, we need to feel it
Please let's get undressed, we need to live it
Fuck me fuck me fuck me fuck me, and make me come again, and make me come again (x2)
I know you know we're all falling into a deep oblivion
I know you know we're all falling into a neverending mess
So we have to take care, take care, and share it, share it, share it together (x2)
Please let's get undressed, we need to feel it
Please let's get undressed, we need to live it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you make me love again, you make me love again (x2)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you make me love again, you make me love again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you make me love again, you make me love again love me love me love me love me, you make me love again, you make me love again ...
좋아하는 두 명의 친구들에게 각각 선물해준 리스트다. 각별한 관계를 유지하거나 무엇인가를 함께 경험해본 일이 전무했기에 다소 무책임한 추천이었을 수도 있다. 의미없는 소리들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 음악을 건냈던 이유는 단순하다. 이 친구들이 참 좋았고 무엇인가를 해주고싶었을 뿐이다. 호감을 느끼는 이유의 상당부분은 나의 현재나 이상의 특정부분을 저들의 표현법과 사고에서 마주했기 때문일 것이다. 결국 나를 지나친 수 많은 사람들 중 내 몸이 표하는 향과 몸짓에 가장 유사한 감각을 엿볼 수 있게 해줬던 친구들이란 거다. 가까운 과거나 지금의 내 상황에서 즐거움과 감동을 촉발시켰던 이 음악들을 저들에게 들려준다면 어떤 감상이 생겨날까. 아마 이들에게도 비슷한 의미로 남게되지 않을까... 싶은 착각. 애정과 동경의 근거가 오해가 아니길 바라는 일종의 미신이다.
그간은 참 무책임하게 인연을 놓쳤던것 같다. 어쭙잖은 객기로 혼자됨을 즐겼던것 같다. 물론 지금도 사람과 함께하는 일에서 큰 즐거움을 느낄만큼 내 자신이 갑작스레 변모한건 아니다. 그러하기에 인연을 확장하며 무엇인가에 안달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내가 말하고 싶은건, 그리고 스스로 반성하고 싶은건 앞에있는 상대에 대한 배려와 그 좋은 사람들의 존재에 대해 감사할줄 아는 겸손이다. 위에 언급한 두 친구들에 대한 나의 태도는 그간 깨치지 못했던 무례함에 대한 반성일 수도 있다. 지금껏 난 참 이기적인 친구였다.
또 한가지 고쳐야 할 점. 어차피 세상에 완벽한 것은 없다. 관계에 대한 불안을 느낄 필요도 없다. 좋아하는 사람들과 현재 나누고있는 언어와 취향 그리곤 서로를 보듬어주는 진심어린 인사면 충분하다. 마침 이 글이 끝나가는 이 순간 플레이리스트 속 트랙인 조규찬의 '이봐 내 여행의 증인이 되어줘'가 흐르고 있다. 뒤이어 흐르는 AIR 의 'Remember'. 그거다. 나이먹음의 과정, 그리고 특정한 시간의 성장과정 중 내 모습을 솔직히 드러내보일, 그런 날 기억해줄 인생의 여행 속 증인. 그 정도면 모든게 충분하고 감사하다. 집착과 서운함은 여기에 필요없다.
빠르게 넓어지는 동시 점차 좁아지고 있다. 인터넷을 통한 관계망의 미래는 오프/온라인의 장벽을 부수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게다가 안그래도 좁은 이 땅의 사람들은 가상공간에서 마저 몇몇 기점을 중심 삼아 모이고 흩어진다. 여기나 저기나 비슷해지고 있다. 척박한 세상살이 탓에 스스로에게 인정머리없는 최면을 거는 요즘의 현실. 주제는 무겁고 오가는 표현은 가볍다. 일상과 취향이 공개된 가상의 놀이터에 모여 어린시절 그 순수함으로 새 친구를 사귀는 일이 퍽 마음에 든다. 다행이다. 이런 사람들이 있어서.
독특한 컨셉의 모음이다.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근거리의 추억들 보다 몇배는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날의 모든 행동과 말은 처음의 의미를 가졌고 당시 생성된 감정적 이미지는 느낌의 특정한 일면으로서 오랫동안 기억에 자리할 것이다. 물론 소박하게나마 선물의 의미로서 만들어진 조합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애써 고민한 흔적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레 떠오른 감정의 살결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일상같은 연상이었기에, 신기한 설렘으로 하나하나를 쌓은듯 하다. 그러하기에 한곡 한곡의 소중함에 비해 콜렉션으로서의 음악적 의미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시간대별로 감정을 정리해 음악으로 기록해낸건 태어나 처음 해본 경험이었기에 적어도 한 두 사람에게 만큼은 참 의미가 있는 리스트다.
많은 부분의 경험들, 그러니깐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사회적 행동의 부산물로서 축적되는 부류에 있어선 내 자신이 생소하고 미숙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열등감 없는 체념이기에 큰 후회는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러한 신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한가지 얻게된 교훈은 상반되는 가치를 대함에 있어 나와는 절대 연이 아닐것이라 지레짐작하며 경시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바웃 어 보이>에는 인간관계를 섬에 비유한 격언이 등장한다. 그 출처가 닉 혼비의 소설일지 폴 웨이츠의 각본일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누구의 조언이건 간에 분명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인건 사실인듯 하다. 각자의 섬으로 떠오른 우리들, 그리고 순응과 노력으로 지어진 관계의 다리. 이런 일차원적인 시각적 비유를 넘어 최근의 경험으로 나만의 교훈을 떠올려 본다면, 여전히 우리는 섬이다. 어떠한 관계도, 그 어떠한 우연도 섬과 섬을 하나의 땅으로 만들어 주진 못한다. 다만 나 자신을 그 섬에 사는 외로운 방랑자로 상상해보자. 비록 섬과 섬이 이어져 자유롭게 새로운 경험과 감정 속으로 이동은 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원천은 변할리 없다. 내 영역에서 느끼는 고독과 영원히 떨치기 힘든 사적인 슬픔은 어떠한 상황과 위치에서도 그 곳에 존재한다. 다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순응과 노력으로 지은 저마다의 다리를 건너며 새로운 가슴떨림과 불안 기대를 경험한다. 저쪽으로 넘어가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본질, 내가 돌아갈 곳의 모습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리가 끊겨 나만의 섬이 떠밀려간다면 난 목숨을 걸어서라도 물에 뛰어들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나의 그곳이 수풀이 우거져 낯설게 느껴진다면 난 기필코 기필코. 그러니 경험의 확대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첫 플레이 리스트 이후 관성처럼 자연스레 쌓아본 곡들이다. 불특정 다수를 위해 음악놀이를 했던건 여기까지였던걸로 기억한다. 게다가 마지막 리스트는 아무런 주제의 맥도 없으니, 아직 테마를 이끌기엔 음악에 대한 정보가 턱없이 부족한것 같다.
난 면허가 없다. 분명 차를 가져야할 이유에 설득이 되면서도 운전이라는 행위가 갖는 불완전성에 남다른 공포를 느끼기에, 난 면허가 없다. 내가 아는 가까운 교수님은 택시를 타고가다 교통사고가 닥쳐 생의 고비를 넘기셨다. 정말 불행하게도 군대를 전역한 이후에 장애인증을 발급 받으셨다. 물론 미미한 정도이기에 일상생활에선 큰 불편이 없으시지만. 나만 잘하면 나만 성실하면 대부분의 것들이 의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인생사의 패턴에서 유독 예외성이 많은 영역인것 같다. 타인의 부주의와 오만이 내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 이건 정말이지 무시무시한 조건이다. 어쩌면 이러한 공포는 승차에 대한 경험미숙으로 부터 생겨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무지하게 많은 요소가 그러했듯이, 나의 유년시절에는 차에 대한 기억이 없다. 우리 집은 자가용이란걸 한번도 가져본적이 없다. 그래서인지 택시를 탔던 경험을 빼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내가 얻어탄 차에 관한 모든 경험을 생생히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차에 타는 일은 내게 낯설다.
시간이 흘러 형은 결혼을 했다. 오토바이가 몸의 일부였던 형도 가족을 위해 차를 샀다. 가끔이지만 일년에 3,4번 정도는 형의 차에 탈때가 있다. 그 작은 공간에서 가장 거대한 소리로 일상의 음악들을 듣는다. 사회생활에 지쳐 문화생활을 사치의 영역으로 밀어둔 형도 자연스레 흥얼거리며 내 음악에 탑승한다. 야경과 바람과 우리의 음악은 그렇게 달린다. 뭐 괜한 불안이었단 생각이 든다. 이렇게 크고 좋은 소리로 어떠한 배경이든 흡수할 수 있는 차와 음악의 경험을 고작 불안따위에 포기하기엔, 역시나 이 순간은 좋다. 어릴적부터 막연히 생각하던 빠른 움직임 속 쿵덕거림의 동료들을 모아 본 Driving 리스트. 이러한 이유로 저 음악들은 내 곁에 꽤 오래 남을것 같다. 전에 갖던 생각이 완전히 뒤집어 졌으니, 이들도 수명을 연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