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짜본 플레이리스트였다. 언제나 그렇듯 첫경험의 의미는 중요하다. 짧고 모호한 주제였지만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2번째 곡은 산울림의 정규 2집 1번 트랙인 '내 마음에 주단을 깔고'이다. 처음엔 예상치 못했었는데, 소수일지라도 이 리스트를 듣게될 외국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그 순간 이런 류의 놀이가 어쩌면 꽤 의미있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어떤 사람으로, 어떤 아저씨로 늙게 될지 모르겠지만 많은 시간이 흘러 다시 이 기억과 마주하게 됐을 때, 뿌듯한 시선으로 지금을 대견해하는 취향인이됐음 한다. 예상외로 무지하게 재미난 놀이가 시작된 거다.
역시나 시작은 '꿈'에 관한 이야기다. 내 인생에 있어 절대 떠나지 않을 두 갈래, 죽음과 꿈. 만일 무엇인가를 창작하는 기회가 온다면 그 첫 이야기는, 그리고 모든 이야기의 뿌리에는 이 둘의 흔적이 남겨져있을 것이다. 일렁이는 호기심과 심오한 어두움에 매료되어 발을 들였지만 가면 갈 수록 더더욱 마음에 드는 영역인것 같다. 난 어떠한 예술 매체건 시간과의 상관성을 해체하는 작업에 반하곤 한다. 인생의 숙명적 동지인 음악, 회화, 영화, 현대미술 하다못해 글의 영역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특정 순간과 탄생-성장을 동반하는 이 행위들은 기억의 일부로서 우리와 함께한다. 그곳에 새겨진 시간의 흔적을 지우는 과정, 사이키델릭한 음악의 초월, 근간이 없을 괴상한 이미지의 매혹, 실험의 영역에 몸을 던진 활동사진의 당돌함. 시간을 부수어 추억과 미래의 경계를 흐리는 작업. 그런 류의 꿈결을 따라 당도하게 될 미지의 영역, 죽음. 그렇게 꿈과 죽음은 다양한 형태로 내 소심한 욕구를 자극한다.
넓은 캔버스에 두 발을 딛곤 하얀 화면을 내려 응시한다. 곧 밤이 찾아와 내 몸은 스산해진다. 눈을 돌려 주위를 보니 겨울 밤의 6시 30분인지 추운 가을의 새벽 3시인지를 분간 못할 어둠이 보인다. 이내 밀려온 안개는 흐리게 퍼져 하얀 화면을 더욱 어둑하게 만들어 준다.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냥 많은 것들을 잊고 싶은 마음 뿐이다. 그 짧은 생각이 끝나고나니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는게 없었다. 앞에 말한 문장의 서술어를 제하면, 내가 언어를 완성하고 있다는 사실 조차 놀라울 만큼 머리 속에는 아무런 것도 남지 않았다. 그 궁금함을 참지 못한 나는 머리 속에 들어가 보았다. 그 곳엔 주황빛 조명이 가득한 산책로가 있었다. 벤치마다 사람은 없고 이슬만 가득했다. 걸어도 걸어도 끝이 없는 주황빛 아스팔트였다. 마침내 사람이 보였다. 한걸음에 뛰어간 그 곳엔 작은 수첩이 있었다. 하얗고 약간 흐릿한 종이. 그 곳을 유심히 살펴봤다. 작은 점이 보였고 무엇인가 축축한 마음이 들었다. 그는 또다시 응시했다. 그 곳엔 넓은 캔버스에 두 발을 딛곤 하연 화면을 내려 응시하는 한 사람이 있었다. 그렇게 밤은 새벽이 됐고, 어차피 오게될 아침은 새로 만날 친구를 반기기 위해 애써 어두운 척을 했다.
술과 밤이 언제나 함께했던 이 리스트 속 음악들은 내겐 이런 류의 존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