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layList .5 - 10.28

2013. 12. 11. 19:47 from Listen




독특한 컨셉의 모음이다. 여자친구를 처음 만났던 날의 기억은 그 이후에 만들어진 근거리의 추억들 보다 몇배는 더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 날의 모든 행동과 말은 처음의 의미를 가졌고 당시 생성된 감정적 이미지는 느낌의 특정한 일면으로서 오랫동안 기억에 자리할 것이다. 물론 소박하게나마 선물의 의미로서 만들어진 조합이다. 하지만 누군가를 위해 애써 고민한 흔적이 아니라 너무도 자연스레 떠오른 감정의 살결들 그리고 그 위로 흐르는 일상같은 연상이었기에, 신기한 설렘으로 하나하나를 쌓은듯 하다. 그러하기에 한곡 한곡의 소중함에 비해 콜렉션으로서의 음악적 의미는 크지 않다. 그럼에도 시간대별로 감정을 정리해 음악으로 기록해낸건 태어나 처음 해본 경험이었기에 적어도 한 두 사람에게 만큼은 참 의미가 있는 리스트다. 


많은 부분의 경험들, 그러니깐 인간관계를 기반으로 사회적 행동의 부산물로서 축적되는 부류에 있어선 내 자신이 생소하고 미숙한게 사실이다. 하지만 열등감 없는 체념이기에 큰 후회는 느끼지 못하는 편이다. 물론 이러한 신념은 지금도 유효하다. 다만 한가지 얻게된 교훈은 상반되는 가치를 대함에 있어 나와는 절대 연이 아닐것이라 지레짐작하며 경시하는 태도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바웃 어 보이>에는 인간관계를 섬에 비유한 격언이 등장한다. 그 출처가 닉 혼비의 소설일지 폴 웨이츠의 각본일지는 명확하진 않지만, 누구의 조언이건 간에 분명 새겨들을 만한 이야기인건 사실인듯 하다. 각자의 섬으로 떠오른 우리들, 그리고 순응과 노력으로 지어진 관계의 다리. 이런 일차원적인 시각적 비유를 넘어 최근의 경험으로 나만의 교훈을 떠올려 본다면, 여전히 우리는 섬이다. 어떠한 관계도, 그 어떠한 우연도 섬과 섬을 하나의 땅으로 만들어 주진 못한다. 다만 나 자신을 그 섬에 사는 외로운 방랑자로 상상해보자. 비록 섬과 섬이 이어져 자유롭게 새로운 경험과 감정 속으로 이동은 가능해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원천은 변할리 없다. 내 영역에서 느끼는 고독과 영원히 떨치기 힘든 사적인 슬픔은 어떠한 상황과 위치에서도 그 곳에 존재한다. 다만 나는, 그리고 우리는 순응과 노력으로 지은 저마다의 다리를 건너며 새로운 가슴떨림과 불안 기대를 경험한다. 저쪽으로 넘어가 많은 것들을 보고 경험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의 본질, 내가 돌아갈 곳의 모습들은 달라지지 않는다. 다리가 끊겨 나만의 섬이 떠밀려간다면 난 목숨을 걸어서라도 물에 뛰어들 것이다. 오랜만에 찾은 나의 그곳이 수풀이 우거져 낯설게 느껴진다면 난 기필코 기필코. 그러니 경험의 확대를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