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미 - NOW

2012. 11. 19. 22:45 from Listen

얼마전 버스를 타고가다 엠피를 망가뜨려 버렸다. 홀드와 전원부를 컨트롤하는 버튼을 부셔먹은 것이다. 안그래도 울적한 기분에 흐리고 찬 날씨까지 더해져 머리가 멍했었는데, 참 가지가지 하는구나 싶었다. 그래도 불행 중 다행인건 당시 플레이되던 앨범이 김정미의 <NOW> 였다는 사실 정도. AS를 받지 않는 이상 평생 이 앨범만 들어야 한다니... 언제나 처럼 버스 맨 앞좌석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슬슬 울적했던 기분이 좋아지고 있음을 알아챌 수 있었다. 평소같으면 해보지도 않을 쓰잘데기 없는 생각을 해봤다. 그래 어쩌면 평생 무인도에 갇혀 앨범 딱 하나만 들어야 한다면 결국 이 앨범을 택하지 않았을까. 제 아무리 명반이래도 연주곡이 절대다수인 재즈앨범을 택하거나 로우파이의 기운이 가득한 뭉그러진 외국의 인디팝/일렉트로 앨범을 선택한다면 결국 상상력과 답답함에 침몰될것 같아. 그런 이유에서 데이브 브루벡과 에어도 힘들겠지. 난 외로운 사람이니깐 또박또박 귓가에 틀어박히는 우리말과 함께 해야겠지.


이상은의 <공무도하가> 앨범만을 평생 듣는다면 분명 허파 속으로 역마살이 들어차서, 되도않는 손재주로 구명선을 엮어 망망대해로 뛰어들었다 이틀안에 태양볕에 말라죽고 말거야. 그렇다고 패닉의 <밑>만을 들을 순 없어. 아마 난 '불면증'을 몇천번이고 돌려듣다 야자수에 목을 메고 까마귀밥이 되버릴 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은 사실 좋은 음악을 하긴 했지만 김종진의 보컬을 평생 듣는다는건 다소 고역이 될거야. 언니네 이발관의 <가장 보통의 존재>를 택했다가 액정이라도 망가지는 날엔 수록곡들이 전부 비슷하게 느껴지는 탓에 죽는 그날까지 제목이 떠오르지 않아 답답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거야. 혼자남은 삶에서 윤종신이나 윤상의 정서는 무용지물.  결국 남는건 산울림이나 김정미야. 이들의 아름다운 앨범만이 외로운 삶을 밝혀줄 거야. 전체 디스코그라피의 평균을 내보자면 산울림이 압도적이지만 단일 앨범으로 치자면 <NOW>를 이길 수 없어. 햇님과 바람. 봄과 봄바람. 꿈과 고독. 그리곤 비. 삶의 마지막을 함께 할만한 최적의 보편적 정서잖아. 대부분 무인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이고. 거기다 김정미의 보컬은 절대로 상하지 않을거야. 장기간 직사광선에 노출돼도 끄떡 없다고. 신중현 선생님의 멜로디와 연주는 어떻게 언어로 표현할 수 있겠어. 그냥 믿고 듣는거야. 이토록 아름다운 싸이키델릭이라니 ...


쓸모없는 생각을 한참 하다보니 버스에서 내릴때가 되었어. 신촌의 싸늘한 버스정류장에 내려서 톡톡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이 앨범을 계속 들었어. 야 이거 참 비도오고 날도 찬데다가 엠피는 망가지고 우산은 없고, 최악의 상황이지만 정말 기분좋네. 우연히도 최악의 상황에서 최고의 앨범을 결정하게 됐다니. 이거 참 행복한 일이야. 


그런 의미에서 너도 이 앨범은 꼭 들어봐. 죽기전엔 한번쯤은 들어 보라니깐. 내 생의 마지막이 될만한 앨범이니 믿고 들어보래두.           




















                    Artist : 김정미

                    Album : NOW


 

                   Track 


                    햇님

                    바람

                    봄

                    당신의 꿈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