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조우, 필립 K. 딕과 스필버그의 만남 '원작과 영화에 관한 수다'


여기 2054년의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한 남자는 100년 후의 모습을 상상하며 60쪽이라는 좁다란 백지위에 그가 꿈꾸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간결하게 써내려갔고, 다른 이는 바로 50년 후인 근 미래의 모습을 145분이라는 시간동안 필름위에 찍어 내려갔다. 작가와 연출가로서 각각 세기의 천재라는 칭호를 받는 이 두 사람이 바라본 2054년의 모습은 비록 같은 인물들이 동일한 상황 속에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있지만 너무나 상이한 모습을 보여준다. 이 영화가 제작될 당시 헐리우드 최고의 감독과 최고의 흥행성을 가진 배우가 조우한다는 사실이 이슈화 되었지만, 그에 선행하여 두 명의 천재적 창조자의 조우 역시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과연 이들의 조우는 성공적이었을까? 아니면 잘못된 만남이었을까?


우선, 앞서 언급했던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 필립 K. 딕은 자신의 명성에 비해서 아직까지 스크린에 옮겨진 편수는 극히 적지만 작품 하나하나가 지닌 그 중량감은 가히 위압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SF장르의 명작으로 손꼽히는 <블레이드 러너>와 풀 버호벤 감독의 독특한 세계관을 엿볼 수 있었던 <토탈 리콜>까지 70년대 이후 부흥기를 맞은 SF영화계의 가장 걸출하고 무게감 있는 작품들은 모두 필립의 손을 거쳐 탄생한 것들이었다. 그는 이 두 작품을 통해 인간의 정체성 상실이라는 주제를 우리에게 제시했다. 사이보그를 통한 통찰과 기억의 상실을 매개로 한 통찰. 언제나 그는 우리 인간들의‘실존’과‘정체성’을 향한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었다. 이번에 언급할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블레이드 러너와 토탈 리콜의 시기적 중점에 존재하면서도 그들보다는 더딘 진화의 시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작품에서는 그간 그가 다루었던 정체성 문제에서 벗어나 약간 다른 시각으로 미래사회를 바라보고 있다. 바로 현대문명의 발달로 인해 기술은 발달하게 되고 그러한 것들이 인간의 삶을 제약하는 문제에 관한 딜레마를 다룬 보고서이기 때문이다. 영화 감상문에 있어 이토록 원작자의 설명이 길어 진건 이 영화를 논하는데 있어서 필립 K. 딕의 존재감은 스필버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2002년, 아무런 기대감도 없이 극장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접했다. 나는 이 영화를 접한 후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 거친 화면과 강렬한 색체들이 어우러진 미래사회의 모습. 그리고 범죄 예방수사국이라는 매력적인 소재와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해 볼만한 정치 사회적 메시지들, 물론 아직까지 감상주의와 가족주의의 틀에서는 벗어나지 못했지만 A.I. 이후 다소 거칠어진 스필버그의 모습이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들었다. 나는 이 영화를 사랑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도 가장 사랑하는 영화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언제나 <파이트 클럽>과 <지구를 지켜라>에 더불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꼽을 수 있는 작품이 바로 <마이너리티 리포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과제를 통해 이 작품의 원작을 접하면서 약간의 실망감과 아쉬움이 남기 시작했다. 그만큼 필립 K. 딕이 구축해 놓은 세계관은 매력적인 것이었다. 영화를 보며 다소 복잡한 전개라고 생각했던 스필버그의 세계관은 핵심을 놓친듯했고 짧은 단편소설보다 단순한 전개였다. 아니 그보다는 상업영화로서 편리한 길을 가기위해 포기한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 정답인 것 같다. 물론 극적 재미와 상업적 완성도는 스필버그의 승리라고 할 수 있겠다. 60페이지로 이뤄진 필립 K. 딕의 2054년은 전혀 흥미롭지는 않다. 스필버그가 만들어낸 반세기 이후의 재해석판은 충분한 재미와 친절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뺄 필요까지 있었을까? 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다수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그에 대응하는 소수가 있기 마련이다.


기본적으로 스필버그의 세계 속에는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작품의 가장 큰 매력을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소설과 원작 모두 기계문명으로 인한 인간속박의 타당성에 관한 의문이나 개인과 집단 사이의 상관성과 딜레마를 다루고 있지만 그것을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유무는 꽤나 큰 차이점을 가져다준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세 명의 예언가는 각각 다른 길들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이 세 개의 보고서들이 하나의 사슬로 묶이면서 그간 진행되어온 앤더튼의 행보를 명쾌하게 해석해 주는 과정은 참으로 매력적이다. 자신의 명백함을 주장하려던 앤더튼은 3명의 예언자들이 보여준 다수와 필연적 소수의 존재를 감지하고, 누명을 벗으려 애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오히려 극이 진행될 수 록 자신의 의지로 바꿔보려던‘운명’이 역설적으로 고정되는 모습은 훌륭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서로 얽혀버린 세 개의 리포트의 순차에 따른 주인공의 심적 변화와 주제에 다가가는 보다 효과적인 요소들로 작용한다. 하지만 스필버그는 이러한 복잡하고 매력적인 요소들을 거부하고, 단순한 음모론과 함정의 수준에서 모든 것들을 마무리 지으려고 한다. 소설의 말미를 장식하는 앤더튼과 워트워의 2페이지에 달하는 대화는 이 소설의 백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것들은 모두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존재했기에 빛을 발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1956 VS 2002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오리지널 시나리오를 창작하는 것 이상으로 원작을 각색하는 작업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몇 백 페이지 분량의 소설을 축약하는 보통의 각색 작업과는 달리 단편 소설을 영화할 할 때에는 연출자의 해석과 세세한 곁가지들의 추가, 그리고 감독의 상상력이 살을 더하게 된다. 이 작품은 원작의 틀에서 여러 살들을 붙여나가기 보다는 모티브와 초반 설정만 차용했을 뿐 원작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시도하고 있다(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같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에 등장하는 캐릭터들 중에서 소설과 영화의 설정이 전적으로 동일한 인물은 단 한사람도 없다. 영화의 주제를 향한 최종적인 목표는 같은 곳이지만 그들이 최종적인 목표치에 도달하기에 앞서 개개인들이 바라보는 단기적인 시야와 동기들은 소설과 영화간의 큰 격차가 있다. 주인공인 앤더튼의 외향에서부터 시작해서 극의 진행에 있어 등장하는 반대세력으로 설정된 인물까지, 모두가 상이하다. 그렇다면 작품 속으로 들어가서 생각해 보면 1952년 필립 K. 딕이 창조한 세계와 2002년 스티븐 스필버그가 창조한 세계는 어떤 장단점을 가지고 있을까?


역시 필립의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목표를 향해 달려 나가는 간결하고 핵심적인 주제 전달이다. 그리고 예언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패러독스를 현명하게 매력적인‘무기’로 전환시키는 과정 또한 작가의 상상력에 힘을 보태준다. 하지만 필립의 작품 속에 발견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이야기만 있을 뿐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이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모든 캐릭터들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과정 속에서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들에 대한 사연은 ‘운명’이요 그들을 향한 시련은‘과정’일 뿐 등장인물에 대한 애정과 감정의 이입은 이미 불가능한 것이다. 극 전반에 깔린 단조롭고 어두운 분위기는 소설 전체를 밋밋하게 만들어 버렸다.




미워도 다시 한번, 그래! 역시 스필버그는 대단해


아무리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원작에 비해 단순화 시킨 상업적‘수’를 썼다 한들 이 작품을 논하는데 있어서 스필버그 감독이 들인 노력과 정성은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등장하고 2년 후, 오우삼 감독 역시 필립 K. 딕의 소설을 영화화 하는데 도전한다. 하지만 결국 이 작품은 스타일리쉬한 오우삼표 영화도 아니었으며, 어두운 미래사회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담긴 필립의 작품도 아니었다. 이도저도 아닌 어정쩡한 작품으로 남아버린 이 영화는 필립의 세계관을 영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따르는 많은 어려움들을 보여주는 예시가 되었다. 그런 점에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창조한 2054년의 시각화는 너무나도 놀라운 것이었다. <E T>와 <쥬라기 공원>을 창조해낸 그의 상상력은 괜한 것이 아니었나 보다. 사실, 원작 소설을 읽어보면 범죄 예방 시스템을 제외하고는 미래사회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주는 소품이나 표현들이 전혀 등장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이 영화 속에서 접할 수 있는 미래사회의 모습들은 전적으로 스필버그에 의해 재창조된 것들이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동체인식 시스템에서부터 정찰용 스파이더와 창조적인 교통체계까지, 영화에서 쓰이는 특수효과는 그 어떤 작품들 보다 더 적절한 곳에 효율적으로 배치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특수효과에 모든 것들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진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려한 기술력으로 포장된 이 영화 속에서는 언제나 기술력과 긴장감 넘치는 연출력이 충돌하며 빛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원작 소설과는 달리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에서 접할 수 있는 상업적인 재미를 충분히 만족시켜 준다. 필립 K. 딕이 창조한 미래사회의 모티브는 그대로 차용하면서 기술력과 거장의 수완을 적절히 혼합시킨 연출을 시도하며 표면적으로나 내적으로나 관객과 평단을 만족시킬 작품을 만들어 냈다고 생각한다. 또한 스필버그가 창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역시 그다운 면모를 보여준다. 필립 K. 딕의 냉소적인 표현과는 달리 스필버그는 인간에 대한 동정과 이해의 손길을 뻗으려 노력한다. 그것은 곧, 소설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이야기 속에 매몰돼있던 캐릭터들을 조금 더 입체적이고 중점적으로 이끌어 내는 작업으로 이어졌다. 주인공인 앤더튼에게는 가족에 얽힌 과거를 부여하고, 원작에서는 특별히 언급되지 않던 예언가에게는 극의 실마리를 풀어나가는 중요한 매개로서 위치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과정에서 지나친 가족에 대한 사랑과 인간에 대한 애정을 보이고 있다. 이런 것들은 스필버그의 영화를 성립하는 중요한 요소들이긴 하지만, 필립 K. 딕이 창조한 어둠과 혼돈의 세계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 설정들이었다. 스필버그의 연출은 오락영화로서 분명히 훌륭한 것이지만, 언제나 그를 따라다니는 가족과 인간에 대한 지나친 애정은 작품의 무게를 떨어뜨리며 원작에 비해 못하다는 평가를 받을만한 구실을 제공하고 있다. 어느 평론가는 이 영화를 두고 필립 K. 딕의 투시력과 스필버그의 창의력 그리고 탐 크루즈의 흥행성이 조합된 영화라고 평하고 있다. 그만큼 이 작품은 다소 아쉬운 부분들이 존재하기는 하나 원작의 주제와 상업영화로서의 재미를 적절히 혼합한 훌륭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두 거장의 조우는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을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두 사람이 바라보는 미래의 모습에는 다소 차이가 있다. 결국 원작과 영화는 필립 K. 딕의 비관과 스필버그의 낙관이라는 가장 큰 차이점으로 대조된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의 만남은 낙관과 비관 중 어느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냐는 문제를 떠나서 인류의 미래에 대해 한번쯤 진지하게 고찰해볼만한 주제를 수많은 대중에게 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것만으로도, 이 둘의 조우는 꽤나 성공적인 것이었다고 생각한다. 100년 전에 존재했던 한 소설가의 메시지와 50년 전에 존재했던 한 감독의 손에 의해 깔끔하게 재단된 이 이야기는 2054년, 그 시대에는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과연 앞으로 이런 일들이 실제로 벌어질지, 그렇다면 두 거장들 중 누구의 예언이 적중하게 될지, 여러 가지로 흥미로운 만남이며 경사로운 조우라고 할 수 있겠다.



SF의 틀 속에 스릴이 살아 숨쉬는 필름 느와르 '장르에 관한 잡설'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기본적으로 SF 영화의 카테고리에 포함된다. 영화와 장르에 대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기에 앞서, 그렇다면 ‘SF 장르란 무엇일까?’라는 기본적인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겠다. 일반적이고 사전적인 의미로서는 과학적 허구<Science Fiction> 즉,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인류사회의 허구들을 뜻하지만 그것이 허무맹랑한 것이 아니요, 과학적 근거를 바탕에 둔 채 인류의 미래를 바라보는 이야기야 한다는 것이다.


솔직히 나는 영화를 좋아하는 편임에도 장르에 대한 이해나 그 특성들을 자세히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편이다. 아마도, 장르 영화들이 사용하는 일정한 틀들이 영화의 진행을 단순화 한다는 편견에‘장르 영화’에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듯 하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SF 장르에서는 전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래서 SF 영화의 분석과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논리적으로 비교할 재주는 없지만, 내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SF 장르영화와 이 작품과의 연계성과 <마이너리티 리포트> 가 가진 매력을 생각해 보고 이 영화에서 SF 장르 외에도 찾아볼 수 있는 타 장르의 적용에 대해서 간단하게 생각나는 대로 이야기 하고자 한다.





SF 장르는 현재의 인류가 상상하는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기에 언뜻 보면 현실과 가장 동 떨어진 지점에 위치한 장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SF 장르야 말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특성들을 가장 자유롭고 은유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현실 반영적’ 장르라고 생각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계문명의 발전에 한번쯤 심각하게 고민할 주제를 던져주고, 현실과 초현실의 경계 속에서 인간이 아닌 존재들을 등장시키며 우리 인류들의 사유를 한번쯤 진지하게 토론하게 하는 SF 장르는 가장 사회적이고 철학적일 수 있는 장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물론 SF 장르라는 말이 곧 어마어마한 제작비와 화려한 테크놀러지의 이용을 필요로 하기에 단순히 덩치만 큰 블록버스터 영화로 취급될 수도 있다. 주제의 전달 역시 중요하지만, 영화 역시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고 거대한 규모의 제작비가 투여되는 SF 장르에서는 오락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요소이다. 인간의 존재와 미래사회의 경계등에 대한 진지한 주제들을 뛰어난 오락성의 박자에 맞추어 관객들에게 전달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훌륭한 것도 없을 것이다.


스필버그의 디스토피아?


그렇다면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SF 장르의 기준에서 봤을 때 어떤 위치에 존재하고 있는 영화일까. 기본적으로 SF 영화는 미래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바로 미래사회에 대한 낙관적인 시각을 가진 유토피아적 발상과 비관적인 시각으로 미래사회를 바라보는 디스토피아의 구분이다. 전자는 과학기술 발전에 따른 인류문명의 모험과 도전이라는 테마를 자주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연출을 맡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나 <스타워즈> 시리즈의 조지 루카스 감독 등이 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후자는 과학기술의 ‘비약적인’발전에 따른 폐단을 보여준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원작자인 필립 K. 딕은 언제나 미래사회를 디스토피아의 기준으로 바라보았다. 비약적인 기술 발전에 따른 인간성파괴와 기계와의 대립구도. 흥미롭게도 SF 영화의 극단적인 양 축에 존재하는 두 명의 창조자는 하나의 작품에서 공존을 시도한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영화는 기계문명의 발달로 인한 디스토피아적 시각을 유지하며 극을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의 결론은 ‘희망’과 ‘가족’이라는 테마로 극복하고 있다. 절망을 이야기 하면서도 가족의 사랑으로 이것들을 극복해 내려는 태도는 다소 의아하게 받아들여진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역시 SF 장르에서 사용되는 몇 가지 틀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우선 이 장르는 시대를 반영하는 우화적 텍스트로서 SF의 기능을 어느 정도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에어리언>이나 <인디펜던스 데이> 등의 영화에서는 언제나 외계의 존재를 표면적으로 등장시키면서 미국인들이 가진‘타’에 대한 경계와 극복의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SF 영화는 현재의 가장 민감한 문제들을 초 현실이라는 틀을 사용하여 은유적이고 상업적으로 포장하곤 한다. 이 해석이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9/11 테러 이후 테러범에 대한 경계를 위해 애국자법<USA PATRIOT>이 제정되었다. 이것은 9/11 이후 일반의 삶을 어느 정도 제한하며 테러방지에 대한 강압적 태도를 취하는 정책이다. 수백편의 판권을 소유한 그가 9/11 테러이후 가장 먼저 이 영화를 택한 것은 이러한 정책에 대한 그의 태도를 보여준 것이 아닐까? 스필버그는 이 후에도 꾸준히 <우주전쟁>과 <뮌헨>을 만들어내며 9/11에 대한 지대한 관심을 보내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속에 담긴, 스릴러와 느와르의 빛


지금부터 언급 할 이야기는 장르적 핵심과는 많이 빗나가는 것일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접하며 느낄 수 있었던 스릴러와 느와르의 맛에 대한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시간이 흘러갈 수 록 영화의 장르 역시 서로간의 공존을 선택하고 더욱 더 풍성한 볼거리와 새로운 주제 전달을 위해 다른 장르와의 배양을 시도한다. 원작에서는 미래사회에 대한 냉소적인 비판이 주를 이룬 단순한 SF 소설에 그쳤던 이 작품은 영화화 되고, 상업화 되면서 훌륭한 스릴러 영화의 구조와 느와르 영화의 빛깔을 첨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화 작업이 이루어지면서 상업적인 목적을 위해 등장인물에 더욱 초점을 맞추고, 캐릭터들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을 액션 스릴러의 구조로 풀어나갔다. 여러 시퀀스에서 스릴러 장르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데, 앤더튼과 아가사가 범죄 예방 수사국의 추적을 따돌리는 시퀀스는 스릴러적 연출이 가장 돋보이는 장면이었다. 예언과 추적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풍선이나 우산 등의 소도구들을 이용하여 관객에게 스릴을 안겨주는 이 시퀀스는 감독의 노련함이 엿보이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일전에 어디선가 읽기를 스필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히치콕의 영화와 많은 부분이 닮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누명과 오해를 받는 한 남자가 진실을 향해 달려 나가는 모습이나 주인공과 경찰과의 관계 그리고 극의 진행과정에서 언뜻 엿보이는 영국식 냉소적 유머까지 이처럼 히치콕의 스타일과 비교된다는 점 자체가 이 영화가 스릴러로서도 상당한 매력을 가지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고 생각한다.


또한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드는데 있어서 특히 촬영부분에 많은 노력을 쏟았다. 그는 2054년형 필름 느와르 느낌을 살리고 싶다고 이야기 할 만큼 필름 느와르는 이 영화를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컨셉 이었다. 기계와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딜레마를 안겨주는 이 영화는 기계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세상을 연출하고자 했다. 그러한 노력은 그간 스필버그 감독이 만들어왔던 그 어떤 영화와도 닮지 않은 냉정하고 차가운 이미지가 가득한 영상을 만들어 냈다. 필름 느와르는 <마이너리티 리포트> 전반을 포괄하는 하나의 컨셉으로서 주제의 전달에 있어 적절한 분위기 형성에 많은 기여를 했다고 본다.





당신들의 미래 <마이너리티 리포트>, '주제를 통해 바라본 영화와 문화의 연관성'


그렇다면 이제 <마이너리티 리포트>가, 스티븐 스필버그가 우리에게 하고 싶던 이야기는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자. 지난 수업시간에 교수님께서 언급하신 영화와 문화의 연계를 나타내는 5가지의 주제 중에서 이 영화를 논하는데 있어서는 사회와 정치에 관한 분석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스필버그는 이 작품을 영화로 만드는 과정에 있어서 다소 난해하고 복잡한 문제들은 생략한 체 몇 가지의 교훈만을 남기고 있다. 나는 그 중에서 한 가지 문제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물론, 이 영화가 전해주는 여러 가지 메시지들이 존재하겠지만, 영화와 내가 접하는 위치에서 가장 중시되어야 할 것은‘나’라는 개인이 이 영화에서 무엇을 느낄 수 있는지를 우선시하기에 나에게 가장 와 닿는 하나의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트뤼포 역시‘영화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면 당신의 우편함을 찾아봐라’란 이야기를 하지 않았는가.


우선 이 작품은 원작소설에서 큰 비중을 두고 다루었던 개인과 체제 사이의 이데올로기를 집중적으로 탐구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SF 장르의 타 영화들과 비교를 해본다면, <터미네이터>에서 보여 지는 미래사회의 모습은 인류의 안락을 위해 발전시킨 기계문명에 의해 역설적으로 지배당하는 모습들이 비춰진다. 일반의 SF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던 인류의 지나친 문명진보적인 시각에 대한 경계와 비판이 들어난다. 하지만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2054년은 아직까지 그러한 문제들을 논의하기에는 이른 시기이다. '감기‘라는 질병도 이겨내지 못한 더딘 발전의 모습을 보여주는 근 미래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반의 SF 영화에서 자주 언급되는 인류의 미래에 대한 경계와 비판의 목소리 보다는 우리사회의 통제권 내에 있는 시스템에 대한 역설에 관한 목소리가 더 높다. <마이너리티 리포트>의 2054년은 범죄 예방 시스템과 인간과의 사이를 중점적으로 봐야할 것 같다. 앞에서 언급한 ’하나의 주제‘란 바로 범죄 예방 시스템에 관련한 잡설들이다.


범죄 예방 시스템, 그 절대 권력에 대하여


우선 우리들은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할 것이 있다. 이 영화의 진행에 있어서, 범죄 예방 시스템이란 워싱턴이라는 한정된 지역 내에서 일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라는 것이다. 이 시스템의 전국화는 국민들의 투표를 통해 이루어질 사항이었으며, 극중에서 다루는 시기적 상황은 투표 시행 이전임을 알 수 있다. 한마디로 현재 워싱턴에서 시행중인 이 제도는 국가에서 일방적으로 추진한 하나의 정책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범죄 예방 시스템은‘정의’라는 목표를 위해 국민들의 생활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고 권리를 박탈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것들을 가장 잘 표현한 장면은 앤더튼을 탐색하는 과정에서 한 아파트를 부감샷으로 훑어 옮겨가는 씬 이다. 이 장면에서 워싱턴의 시민들은 부부싸움을 하는 도중에도, 심지어 성행위를 하는 도중에도 정찰용 스파이더의 동체인식 검사에 일상적인 반응으로 응하고 있다. 이러한 사생활 침해에도 국민들이 범죄 예방 수사국에 반기를 들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자신의 목숨에 대한 보장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죽지 않기 위해 자신들의 인권침해를 암묵적으로 합리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곳에 나타난 사회의 구성원들은 자신을 보호해 주리라는 믿음을 갖게끔 하는 새로운‘권력’에 의해 암묵적으로 통치당하고 있다. 이것은 기본적으로 인권침해에 관한 문제들을 전제하며, 그 이상의 문제들을 야기하는 것이다.


범죄 예방 수사국의 감사 임명을 받은 워트워는 수사국을 직접 접하고야 그곳의 시스템과 실체를 알 수 있었다. 연방수사국의 대표로 감사 임무를 맡은 이가 이곳의 시스템에 대해 그제 서야 알 수 있었다는 것은 범죄 예방 수사국의 폐쇄성과 정치적 권력에 있어서의 타 기관의 우위를 보여준다. 살인의 예방이라는‘사회정의’를 등에 업고 국민과 사회의 법 위를 휘젓고 다니는 범죄 예방 수사국은 하나의 거대한 권력으로서 사회적으로는 인권에 대한 경시와 정치적으로는 암묵적인 통치를 행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명을 구하기에 그러한 자격들을 가질 수 있는 것인가?




인명은 재천이거늘...


모든 물음에 있어 기본적으로 밝혀야 할 문제는 범죄 예방 시스템의 확신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이다. 극중에서 앤더튼은 워트워를 향해 테이블 끝으로 공을 굴려 보낸다. 그리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공을 워트워는 잡아낸다. 이 장면에서 앤더튼은 범죄 예방 시스템의 확신을 보여준다. ‘당신이 공을 잡은 이유는 공이 땅으로 떨어질 것을 알고 있었고, 당신이 그 공을 잡음으로서 공은 땅에 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가해자가 어차피 유발할 살인에 대해 사전에 차단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인간과 인간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하나의 물체를 비교한 이 이야기는 어느 정도의 설득력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우발적 살인을 행하려는 이에게 실행 이전에 다가가 범죄를 차단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가. 범죄 예정자들이 ‘살의’를 가진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그 사람을 범죄자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그는 감정적으로 살인을 시작했음에도 아직 물리적으로는 이행되지 않은 상태이다. 그렇다면 범행 직전에 검거된 이들을 어떻게 살인자와 같은 처분을 내릴 수 있는 것일까? 무엇보다 인명은 재천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앞일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바로 사회와 인류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예언’과 기술적 조합이라는 인력으로 극복하려 하는 것이다. 아니 도전 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오만이자 자연에 대한 무모한 도전인 것이다. 인간이 규정한 시스템으로 다른 인간을 옭아매는 이 행위는 과연 정당한 것일까? 사회적인 법과 윤리의 틀에서 많은 것들이 어긋난 시스템으로 볼 수 있다. 기존에 자신들의 사회적 약속으로 만들어낸 법체계를 무시하는 모순적인 처사라고 생각한다.


※ 여 담

【 지금까지 이 부족한 글을 정성스레 읽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3장 분량에 맞추려다가 제가 워낙에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쓸데없는 말들이 이리 저리 붙어 길어졌습니다. 그 쓸데없는 말들 하나하나가 전부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향한 저의 애정이라 생각하니 지우기는 안타깝더군요. 저 역시 작게나마 미래의 시나리오 작가가 되는 꿈을 가지고 있는 공무원 지망생입니다. 영화를 유난히 좋아하기에 이번 수업을 신청하게 되었는데 시나리오 작가분의 강의를 듣게 되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밝히기를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작품을 좋아함에도 이 과제를 수행하기 전에는 영화에 대한 완벽한 이해를 하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영화에 대한 이해를 위해 국내의 여러 평론가들의 글들을 접하고 이 영화에 대한 사사로운 자료들을 접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것들을 배우고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고 깨달은 내용들이 다소 저의 영화 감상문에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평론가들의 생각에 동의하고 제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부분들에 대한 명쾌한 표현들을 읽어나가며 많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감상문에 쓰인 글들이 다소 영화 평론가들의 논지와 유사한 점들이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21살




Posted by Alan-Shor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