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합의 안정감을 선호한다. 자신들의 몸을 포개어 서로의 근거와 예증이 되어주는 어느 세가지 것들의 만남. 한가지 컨텐츠를 단단히 구축해낼 자신감도 없기에 이와같이 내 부족함을 기획에 기대보려는 의도이기도 하다. 경계와 제한이 존재치 않는 자유로운 공간이 되었으면한다. 비록 사소한 단서가 되더라도 차곡히 정리해보고자 한다. 영화적 감흥이란 이름으로 머릿속에 오래토록 축적되어가는 '순간'과 '사건'의 이야기들이 미련의 여지로서 굳어지기전에 스케치 정도를 기록하고자 한다. 블로그의 존재가치에 대한 의문을 갖고 슬며시 권태의 길로 접어드려는 찰나 본 카테고리의 글들이 새로운 활력과 동력으로서 유일한 취미생활이 수면아래로 가라앉지않게 날 잡아줬으면 한다.
세점을 잇는 첫번째 이야기는 춤추는 그대들의 모습이다. 사실 영상을 편집해놓은건 4월 경이었다. 당시의 주 목적은 오마주의 어느 단면에 대한 흥미거리였다. 장 뤽 고다르의 64년이 할 하틀리의 92년에게 그리고 94년의 타란티노에게, 최종적으로는 2009년의 정성일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는지가 궁금했다. 하지만 영상을 한두번 돌려볼 수록 최초에 선물받은 뮤지컬씬의 달콤한 감흥이 확연히 줄어듬을 느끼게 되었다. 왜 일까? 매일매일은 과장이지만 이따금씩 3명의 젊은이들이 어느 한적한 카페에서 즐기는 순간의 군무들을 떠올리며 고민해봤다.
두달사이 몇권의 책을 훑으며 몇번이고 마주치게된 이름이 있었다. 진켈리, 그리고 그 중에서도 <파리의 미국인>. 뮤지컬 장르의 분명한 역사이자 보물같은 순간인 본 작품의 모습에 대한 기억을 더듬다보니 극단의 위치에서 색다른 뮤지컬씬을 연출해낸 세 작품들의 단서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쿠엔틴 타란티노의 이야기를 빌려온다. 「 나는 항상 영화속의 뮤지컬 신들을 좋아했다. 특히 '뮤지컬 장르가 아닌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더욱 좋아했으며, 고다르 영화 속의 뮤지컬 신을 가장 좋아한다. 왜냐하면 그의 영화에선 갑자기 뮤지컬 장면이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그 신은 매우 매혹적이다.그리고 뮤지컬 장르에 속하는 영화가 아니기때문에, 뮤지컬 신을 삽입하려면 영화의 흐름을 잠시 멈추어야 한다. 그 점이 영화를 더욱 달콤하게 만든다. 」
어느정도 생각을 정리한 후에 읽게된 '돌발적 뮤지컬신'에 관한 타란티노의 이야기는 독자적 편집에 의해 훼손되어버린 이들의 매력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 청춘과 불안의 어느 접점에서 튀어오르는 그대들의 몸짓은 <시카고>의 화려함이나 <렌트>의 열정마냥 작은 틀안에 가두어 각자에게 이름을 붙여줄 수있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러고보니 감정과 이야기를 쫓는 방식에 있어 논리적 서사보단 춤이라는, 인간의 육체로 표현해낼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움직임으로서 직접적인 교감을 시도하는 뮤지컬 장르를 갑작스레 끼워넣는 방식은 가장 충격적이며 언제까지나 젊음의 이름으로서 기억될만한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1년 정성일은 김홍준과의 대담자리에서 <국외자들>의 카페 뮤지컬신을 최상의 뮤지컬로 손꼽은 바 있었다. 고다르의 최고작은 아니지만 최상의 뮤지컬은 분명하다던 그 이야기. 새삼 떠오른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펄프픽션>에서 잭 래빗 슬림 댄스 컨테스트 역시 이들과 분명한 접점이 있는 모습이긴하나, 영화광의 지독한 욕심은 한 신속에 고작 한편의 작품에게 구애할 순 없었는지 너무나 많은 인용과 오마주가 있었기에 별도의 케이스로 떼어놨다.
- 26살